“한국의 대명절 추석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모일 친척 하나 없는 이방인에겐 쓸쓸함만 커지는데요. 타향살이에 지친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향같은 방송, ‘이주노동자의 Voice’ 서머르 타파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께요. 지난 3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여러분과 함께 했던 ‘이주노동자의 Voice’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됐어요. 아쉬운 맘을 달래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습니다.

처음 민주노총 산하 이주노동자 지부 소개로 라디오 DJ를 제안받았을 때 사실 선뜻 응할 수 없었어요. 공장 일과 노조 일이 벅찬 나머지 라디오 방송까지 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 보는 한국 언론대신 내가 직접 이주노동자 문제를 말하고 그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 결심이 결국 마이크를 잡게 한 것이지요. 예기치 않은 이 일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힘을 주고 제게는 보람을 안겨줬어요. 방송을 통해서 많은 친구들이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털어 놓기도 하고 고향의 소식·노래 등을 들으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 이주노동자 노조에 관해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홍보도 할 수 있어 저에겐 보람된 일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한국에 온지도 어느새 9년째입니다.

처음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 빨리 모국인 네팔로 돌아갈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나 한국에 와보니 네팔에서의 계약과 달리 지주회사가 월급의 50%를 가로채고 일을 하다 다쳐도 어떠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노예생활과 다름없었죠. 설상가상으로 99년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했어요. 수술비도 없고 오갈데 없는 저는 안양의 이주노동자 상담 사무소에 머무르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겪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민주노총에서 이를 위한 운동까지 하게 된겁니다.

결국 3년을 예상한 한국생활이 처음의 세배에 달하는 시간을 향하고 있네요. 지금도 네팔에 있는 가족들은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에요. 더욱이 제가 막내인데, 네팔에서는 막내가 부모님을 부양하거든요. 한국 나이로 31살이니 네팔에선 결혼할 나이도 꽤 지났고…. 그래도 하던 일을 모두 제쳐두고 돌아가기엔 책임이 너무 막중합니다.

지난 7월 말 통과된 고용허가제는 표면적으로는 우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만 사업이동의 자유권이 없고 매년 고용주와 계약을 새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의미해요. 더욱이 체류기간이 4년 이하인 이주노동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저같은 장기체류자는 강제출국 당해야 합니다.

언제 강제 출국 당할지 모르지만 이주노동자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겁니다.

너무 제 얘기만 했나요? 여기서 음악듣고 2부로 넘어 가겠습니다.

” 강제 출국에 대한 걱정과 마지막 방송의 아쉬움 때문에 착잡한 마음일텐데도 그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인상쓰고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적극 나서야지요.” 한국사회가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보다 더 좋은 사회로 발전하길 바란다는 서머르 타파씨. 그때가 되면 그도 네팔로 돌아가 모국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고 싶단다.

그가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그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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