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수) 군사분계선을 넘다 ‘여기서부터 비무장지대’ 녹색 표지판에 하얗게 아로새긴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곧이어 군사분계선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우리는 58년 만에 북녘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단절된 남·북 상황을 보여주듯 사람의 발길이 채 닿지 않은 그곳엔 푸르른 녹음만 무성하다.

늘상 보고 자라 눈에 익숙한 산과 들이 고스란히 이어져, ‘비무장 지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없다면 어떠한 경계도 찾아 볼 수 없다.

분단 이후 정재계 인사 외에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은 지난 8월13일(수)~16일(토) ‘제1회 금강산 평화캠프’에 참가한 756명의 대학생들이다.

“58년동안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곳이라 환상이 컸는데 막상 우리의 자연과 너무 똑같아 씁쓸하다”는 김나래(전남대·3)씨의 말처럼 반세기 동안 굳게 닫힌 미지의 세계를 통과하는 설레임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에 이내 허탈해지고 만다.

먼지 풀풀나는 비포장 도로를 1시간 20여분을 달렸을까. 캠프단은 금강산으로 가는 제1통로인 장전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부터 온정리 마을을 지나 숙소가 있는 곳까지 8.15km의 도보행진이 시작됐다.

캠프단은 ‘우리는 하나’라고 쓰인 한반도기를 어깨에 두르고 힘찬 한 발을 내딛었다.

지금 우리가 내딛는 이 발걸음이 다음 우리가 밟을 수 있는 길을 다진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행군하는 길 너머 철조망 사이로 기와 지붕의 집들이 보인다.

소로 밭을 메는 사람들,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있는 아이들. 이들과 서로 손이라도 흔들면 여기저기서 주체할 수 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8월14일(목) 북측 안내원을 만나다 캠프단은 금강산 관광 코스 중에서도 제일 명소라 불리는 구룡연 등반에 나섰다.

등산로 길목마다 서 있는 북측 안내원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캠프단을 주시하고, 캠프단은 그런 북측 사람들이 아직은 낯설다.

그러나 경계도 잠시 뿐, 캠프단과 북측 안내원은 곧 친해져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운다.

눈화장이 고운 북측 안내원 언니는 까맣게 탄 피부를 걱정하며 “남측에서는 피부관리를 어떻게 합네까?”라고 묻는다.

옆집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편안한 대화 속에서 단절된 세월은 무색하기만 하다.

한편 평소 관광객과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는 북측 안내원 아저씨는 “북측 주민들이 남측 대학생들을 무척 반겼지만 더러 손을 안흔드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왜 그랬다고 생각합네까?”라고 묻는다.

이에 한 남학생이 “오랜 세월동안 분단돼 동질감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게 아닐까요”라고 답하자 북측 안내원 아저씨는 “내래 주민들에게 물어봤는데 찢어진 청바지, 노란 머리를 한 남측 대학생들이 외국 사람같다고 합디다.

남측은 외풍의 영향을 받아도 너무 많이 받은것 같습네다”라며 혀를 끌끌찬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장벽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8월15일(금) 금강산 정상에 서다 마지막 날은 금강산의 절경과 북측 교예단의 아찔한 공연에 두 번 넋을 잃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노닐었다는 천선대와 정상에 서면 만가지 형상이 다 보인다는 만물상. 첩첩이 쌓인 기암괴석과 흩날리는 구름이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그 최정상에 서서 금강산을 내려보니 지상의 미천한 존재인 우리가 신선이 된 듯한 환상까지 불러일으킨다.

금강산에서의 신선놀음을 채 잊기도 전에 북측 교예단 공연이 바로 뒤를 이었다.

공중에서 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뱅글뱅글 도는 고난도 기술부터 공 위에서 균형잡는 익살스런 묘기까지. 캠프단 중 몇몇이 무대에 올라가 교예단의 시범을 따라해 장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열심을 다해 멋진 공연을 보여준 북측 교예단과 이에 환호하는 대학생들이 어우러져 남·북이 하나가 되는 마당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남과 북이 함께 “반갑습네다∼다시 만나요∼”를 부르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왜 가슴시린 노래를 부르며 기약없는 작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한 학생이 울먹인다.

이 모든 상황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순간 멍했다.

#8월16일(토) 통일의 꿈을 안고 서울로 돌아오는 캠프단은 떠날 때의 상기됐던 분위기와 달리 차분한 모습이다.

기약없는 작별과 아쉬운 이별에 착잡한 마음이 컸으리라. 군사분계선을 다시 넘으며 돌아본 북녘 땅은 오던 길 그 모습 그대로다.

언제 다시 이 곳을 찾을 수 있을지, 그때도 이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북녘의 아름다운 자연에 가슴 뿌듯해 하고 간혹 만나는 북측 사람들에게 반가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우리들이기에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 그 한가지는 북녘 땅에서 멀어지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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