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이리 세상은 삭막해지는가/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네/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명동성당 앞에서 문화노동자 연영석씨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길가에 마이크 세워 두고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다면 바로 그다.

대체 무엇을 ‘간절히’ 원하길래 저리도 ‘간절히’ 노래를 부를까? “저요? 문화노동자라 불러주세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연영석씨는 집회나 시위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가 만든 노래로 노동자와 연대를 꾀하는 ‘노동자’다.

장애인·비정규직·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과 투쟁 장소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는 그는 며칠전 화물연대 파업 집회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해고자·산재 피해 노동자 자녀를 위한 장학복지재단을 만들기 위해 매주 월요일 명동성당 앞에서 모금하고 있어요.”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이 터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노동자들을 보며 이같은 모금운동을 결심하게 됐단다.

박준·손홍일씨 등과 함께 목이 쉬어라 공연하면 모이는 성금은 하루에 15∼20만원. 목표액 5억을 채우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그의 노래는 그칠 줄 모른다.

이같은 문화노동자로서 그의 삶은 대학 시절부터 예고됐다.

미술이 좋아 1989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한 그는 갑자기 30만원이나 오른 등록금을 인정할 수 없어 등록금 투쟁을 벌인 것이 운동의 시초였다.

이후 대학 4년을 이른바 ‘거리의 학생’으로 보낸 그는 세상의 중심인 노동자가 정작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동미술운동을 시작한다.

이후 정치풍자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일러스트 조각전’에 출품하는 등 주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가수로서 첫 무대에 오르게 되고 그의 ‘노래’는 처음 빛을 발하게 됐다.

사연인 즉슨 1997년 락밴드 천지인 공연에서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한 가수 윤도현씨가 펑크를 내자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얼떨결에 무대에 오른 것. 이후 직접 작사·작곡한 2장의 앨범 <돼지 다이어트>·<공장>은 세상을 향한 풍자가 꽤나 신랄한 작품들이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엄만 내게 묻지/ 밥은 먹고 다니냐고 잘 사냐고/ 엄마 정말 미안해요 그런 마음 뿐인데…” 요즘 그는 직접 만든 노래 <엄마, 미안해>의 가사와 꼭 같은 심정을 갖고 있다.

1년 365일 투쟁의 현장으로 바쁘게 공연을 다니니 남들처럼 부모님을 잘 챙겨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단 그뿐일까. 대부분의 공연에서 출연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그는 늘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자신이 힘든 것은 그럭저럭 견딜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견딜 수 없이 속상하단다.

“그래도 내 노래와 호흡해주는 동지들을 만났을 때 되려 힘이 생기고 그 사람들의 신선한 에너지가 나에겐 창작의 원동력이 돼요.” 앞으로 미술과 음악 중 무엇을 할거냐는 물음에 그는 “미술이냐 음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으로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거리의 노래를 부르고 조각을 하며 이 땅의 노동자와 함께 손잡고 나아가겠다는 그는 ‘세상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그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닐까? 날이 저물고 어느새 명동 거리는 네온사인으로 화려해진다.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으로 복잡한 거리 속에서도 작지만 뜨거운 희망의 멜로디는 오늘도 계속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