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지어 느는 것은 빚과 골병뿐”
“농사지어 느는 것은 빚과 골병뿐”
  • 김미래
  • 승인 200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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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화여대에서 봄농활왔어요∼” 산 밑에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은 인기척 하나 없이 한적하다.

기자가 지난 16일(금) 우리 학교 경영대 봄농활팀과 함께 찾아간 곳은 경북 고령군에 있는 오사리 마을. 마을회관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곧장 밭으로 향했다.

최병갑 아저씨가 경작하는 양파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마음 아나?” 묵묵히 잡초를 뽑던 아저씨가 입을 뗀다.

심한 불경기로 농산물 소비가 줄어 풍년이 들어도 경작물 값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 풍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단다.

“올해 마을의 수박 농가 2/3가 출고조차 못하고 있는기라. 작년에 1만2천원~1만5천원 하던 최고 품질 수박이 올해는 7천원으로 떨어져 버렸으니 말 다했제.” 이런 상황은 2004년 WTO 쌀 재협상을 앞두고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쌀 수입을 위해 수매가 인하정책(쌀가격 하락정책)·쌀 생산 조정제도를 도입해 쌀 생산을 지속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 “정부에서는 쌀농사 짓지 말라카고… 먹고 살려고 뼈빠지게 고생해 농사지어도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드니 농민들이 논농사를 포기하고 상업작물로 전환할 수밖에.” 이 때문에 농산물은 넘쳐나고 농산물 가격은 더욱 하락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정부가 과거 3년 동안의 가격과 비교해 떨어진 쌀값의 80%를 지원한다고 한다.

더욱이 올해 6월 임시국회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비준된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우리 공산품을 수출하는 조건으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겠다는 것인데 그럼 피해보는 건 결국 우리 농민 아이가.” 아저씨는 정부가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대책은 커녕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없는 소자본 농가를 내모는 정책만 취하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뙤약볕에서 한참을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뒤로 젖히니 ‘우두둑’ 소리가 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아직도 일군 밭보다 일궈야 할 밭이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에휴∼ 어느 세월에 다 한담?’ 새참을 먹으며 잠시 바람에 땀을 씻을 무렵, 김영만 아저씨가 직접 재배한 멜론을 한 보따리 들고 오셨다.

옥수수·딸기 농사 다 망하고 어떻게든 살림살이 펴보겠다고 시작한 것이 멜론농사란다.

그러나 느는 것은 빚뿐. 1년에 갚아야 할 이자만 1천만원이다.

“비닐하우스 농사 한 번 망하면 3년을 굶는기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세계화 시대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시설의 현대화로 마을의 젊은 농민 대부분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하나에 1~2천만원 하는 기계를 사들였다.

그러나 경기악화·농산물 가격하락으로 농가들은 투자된 자금조차 건지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만 떠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원금만이라도 갚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라. 그렇게 되면 농민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지 않겠나?” 농민단체들은 농가부채 해결을 위해 농업부분에 투입되는 정책자금을 낮은 이자율로 장기적으로 융자받을 수 있을 것 등을 요구했고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국회의원이 바뀌어도 농촌의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농협에서 자꾸만 빚독촉장이 날아와 이를 메우려고 다른 데서 또 대출하고… 농사해서 느는 건 빚뿐인기라.” 이 말을 듣고 있던 최병갑 아저씨가 한마디 거든다.

“느는 게 또 있지예, 골병!”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묘판에 볍씨 뿌리기를 하고 계신다.

6월 중순 쯤 있을 모내기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손이 많이 가는 간단치 않은 작업이다.

볍씨를 뿌리는 할머니들의 정성스럽고 세심한 손길에서 올해 농사가 잘되길 기원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서툴지만 우리 농활팀도 조심스럽게 일손을 거든다.

“일손이 이렇게 많으면 농사일도 쉬울낀데.” 흐뭇해 하시는 할머니의 말은 그러나 점점 고령화되가는 농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음날 아침, 2박 3일간의 짧은 농활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려니 신세만 지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기자양반, 이번 여름에도 꼭 다시 와야 하는기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을 흔드는 마을주민들을 뒤로 한 채 마을을 나섰다.

이번 여름 오사리 마을을 다시 찾을 땐 마을 주민들 마음 속의 골병이 나아 있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