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반전시위 ‘전국 300만 대학생 행동의 날’이 종묘 공원에서 진행됐다.

국회가 지난 2일(수) 한국군을 이라크로 파병하겠다고 결정한 직후 열리는 반전시위라 부리나케 취재를 나서던 중이었다.

샛노란 산수유와 연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화의 교정은 화사한 봄 햇살 아래 이미 또 하나의 꽃이었다.

그 안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봄을 찍는 이화인들을 보니 나도 저 속에 끼어 봄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취재 때문에 아쉽지만 돌아서야 했다.

부랴부랴 도착한 종묘 공원. 그 곳은 하늘과 땅이 하늘색 물결로 가득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하늘색 손수건은 기본이고 가슴에 단 리본까지 파란 하늘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외치는 1천2백명 대학생의 전쟁반대 함성은 이라크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종묘 공원에서의 집회가 끝나고 학생들이 광화문까지 촛불 행진을 하려 할 때였다.

방패를 들고 완전무장을 한 전투경찰들이 종묘 공원을 겹겹이 둘러싸 학생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전투경찰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학생들은 전투경찰에게 호소했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전투경찰 대오를 뚫기 위해 남녀 구분없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방패를 사이에 두고 전투경찰·학생·기자, 게다가 구경하던 할아버지들까지 한데 뒤엉켜 몸싸움이 일어났다.

전쟁 반대를 위한 이 곳은 전투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경찰의 방패에 맞아 눈이 찢어져 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다.

‘이라크의 평화’는 ‘종로 거리의 폭력’에 눌려 그 외침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평화를 위한 젊은 외침은 전투경찰의 두터운 벽을 뚫지 못한 채 다음 집회를 기약하며 뿔뿔이 해산할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썰렁해진 종묘공원. 곱게 물든 진달래와 순백의 목련이 애처로웠다.

‘평화를 향한 외침이 묵살된 이곳에도 봄은 있었구나!’ 취재 오기 전 봄을 만끽하던 이화인들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이화인들의 그 평화로운 모습과 TV에서 본 이라크인들의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봄의 유혹을 접어두고 왔지만 무참히 짓밟힌 하늘색 물결의 모습이 교차되며 가슴 한 구석이 착잡했다.

3주째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국의 대학에는 이라크 평화를 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고 한다.

아까 본 이화의 평화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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