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서해 바다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산허리에 자욱하다.

살며시 내려앉은 물안개만큼이나 고즈넉한 새벽, 여러 군데 천을 기운 누더기 차림의 한 농부가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볕이 좋으니 콩밭에 김을 매야겠구나.’ 호미를 챙겨 바지런히 집을 나서면 비로소 윤구병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콩밭에서 김매는 그의 호미질이 꽤나 능숙하다.

본토박이 농사꾼이라 해도 별 무리 없을 듯한 윤구병씨는, 그러나 본격적으로 호미를 손에 쥔 것은 불과 9년 전이다.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를 ‘철학 교수’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염증과 자연에 대한 오랜 사랑으로 나이 쉰이 넘어 농사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올해 환갑을 맞이한 윤구병씨는 “나는 이제 겨우 9살배기지”라며 소박하게 웃는다.

“상품 경제 사회인 도시에서는 남을 종으로 부리지 않으면 내가 종이 돼야 해. 남 위에 군림하기 위한 노동이 어디 진정한 노동인가?” 반면 그가 택한 농촌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해야만 살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둥지를 튼 곳은 변산반도. 갯살림·산살림·들살림을 모두 할 수 있는 이 곳이야말로 그에겐 더 없이 좋은 살림터다.

그 살림터에 하나 둘 사람이 늘어갔고 지금은 스무 명 남짓한 식구들이 ‘변산 공동체’를 이뤄 생태주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의 이런 뜻이 알려지자 각종 강연 초청·원고 청탁 등이 쇄도했다.

그러나 그는 “농사꾼이 글을 쓴다며 방 구석에 앉아만 있으면 농사는 누가 짓느냐. ‘건달’농사꾼밖에 더 되겠느냐”라며 딱 잘라 거절한다.

지난해까지 맡았던 월간 ‘작은책’ 편집장을 그만 둔 것도 농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내린 결단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고단할 만도 한데,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킨 윤구병씨는 어디론가 바삐 간다.

숲길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자연이 빚은 또 하나의 천국이 펼쳐진다.

그러나 벌써 그가 몇 차례 콩·포도나무를 심어봤지만 허사로 돌아가고 만 땅이다.

문전옥답이라고, 매일 들러야 하는데 워낙 외진 곳이라 이틀에 한 번밖에 돌보지 못한 탓이다.

‘올해는 이 땅을 꼭 살아 숨쉬는 터전으로 일구리라.’ 이 곳은 그의 꿈이 서려있는 땅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당산할매’를 찾는다.

매번 찾아가 안부를 묻는 ‘당산할매’는 다름 아닌 팽나무. 동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부터 있었다는 팽나무는 그 수많은 가지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너무 오래돼 군데 군데 썩은 부분을 껍질 안에서 새 살이 돋아 덮는 것을 보고 그는 모든 생물은 자기 치유 능력을 지닌다는 진리를 깨달았단다.

자연이 곧 그의 스승인 셈이다.

모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공동체 식구들은 직접 빚은 백초술을 기울이며 하루의 노곤함을 풀어놓는다.

편안한 마음에 이내 십팔번인 노래 ‘기러기’를 흥얼거리는 윤구병씨. ‘가난하면 어떠랴, 내 이렇게 행복한 것을.’ 오늘 밤도 행복한 농사꾼의 노래가 변산의 하루와 함께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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