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전11시면 어김없이 교육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한성대 김동애 전 대우교수. 7년 6개월동안 한 학기도 빠짐없이 강의해 온 학교로부터 예고도 없이 임금삭감·직위해제를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그는 즉각 소송에 나섰지만 시간강사는 고등교육법상 교원에도 속할 수 없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에도 속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고 패소했다.

“엄연히 대학에서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시간강사인데 아무런 법적지위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가 유령도 아니고…”라며 한숨짓는 그의 얼굴에서 시간강사의 암울한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6∼70년대만 해도 시간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으로 병환·안식년 등으로 빈 다른 교수의 자리를 대신해 훈련삼아 강의를 했다.

때문에 교원으로서 이들의 신분에 대한 법적 규정이 모호한 상태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대학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대학이 시간강사를 대폭 임용함에 따라 이들의 상황에도 변화가 따르기 시작했다.

한국비정규직대학교수노동조합(비정규직 교수노조) 심세광 성균관대 분회장은 “현 77개 대학 강의의 5∼60%를 담당하는 시간강사는 과거와 달리 전업화됐는데 이들에 대한 대우는 과거 수련생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분개한다.

이러한 시간강사의 법적으로 불안정한 신분은 경제적 대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시간강사는 최저임금법·산재 보험등 4대 보험·연금·퇴직금 중 어느 것 하나 적용받지 못한다.

강의료 역시 전임교원과는 달리 연구·수업 준비 시간을 제외한 채 강의 시간으로만 지급받고 있으며 그 액수 또한 터무니없이 적은 실정이다.

우리 학교 ㄱ강사는 “일주일에 3시간 한 과목을 강의하고 받는 돈이 월36만원이라고 하면 학생들조차 놀란다”며 “강사들이 수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인 배려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렇듯 대학교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점점 늘어가는 시간강사지만 정부와 대학이 그들에게 걸맞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교육·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대우를 해주지 않음으로써 전반적인 대학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한성대 김동애 전 대우교수는 “시간강사들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학기에 4∼5개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의한다”며 “궁극적으로 이는 강의준비와 연구에 소홀해져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대학생”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무엇보다 시간강사에게 ‘교원 근로자’로서의 법적지위를 보장하고 그에 걸맞는 근로·연구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사학 전공)는 “학교와 정부의 투자가 안돼서 이러한 문제를 초래했다”며 “교수 충원을 늘려가면서 강사 임용시 적어도 1년 단위로 계약을 해 이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등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한 길은 멀기만 하다.

90년대 초 강사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전국의 학교에서 노조·강사협의회가 결성됐고 이들의 힘이 모아져 지난 94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이 출범됐지만 각학교의 분회가 와해되면서 현재는 성균관대·영남대·성공회대 세 학교만이 남아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비정규직교수노조)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을 강사로 추천한 교수와의 인간관계라든가 전임교원 임용에 대한 기대심리가 학교측의 보이지 않는 외압과 맞물려 강사들 스스로도 노조활동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에 교육부와 대학은 미봉책만을 내세우며 뒷짐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성대 김동애 전 대우교수는 “정부와 대학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을 때 모두들 ‘바위에 계란치기’라며 말렸어요. 결국 어디에서도 강의 자리가 들어오지 않았고 사회에서 암매장당한 기분이었죠”라며 그간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비정규직 교수 노조 임성윤 위원장은 “정부와 대학이 시간강사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한 학술진흥재단을 통한 연구교수 채용도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시간강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비정규직의 확대에 불과하다”며 정부와 대학의 안일한 대응책을 비판했다.

교육의 질보다 경영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학 당국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대학생들과 시간강사다.

시간강사가 더 이상 슬픈 일용직 노동자로 남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피해자인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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