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 노무현 정권이 연내에 호주제를 폐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해 긴 시간 고군분투해온 사람들의 외침이 빛을 보려는 순간이다.

여성부 김애령 정책개발평가담당관은 “빠르면 연내에 호주제 폐지를 목표로 이를 위한 대책기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해 호주제 폐지는 이제 시간 문제임을 시사했다.

호주제 폐지 시기의 중요한 변수는 현재 위헌제청신청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검토 중인 호주제 관련 민법조항의 위헌여부 결정이다.

위헌 결정이 나면 호주제 폐지를 입법화하는 데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호주제 폐지는 더욱 지체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호주제 관련 민법조항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민법 제781조 제1항의 ‘자(子)는 부(夫)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고 부가(夫家)에 입적한다’, 제826조 제3항 ‘처는 부(夫)의 가(家)에 입적한다’ 등이다.

이러한 법률 조항은 그동안 부계혈통주의를 내세워 남녀차별을 초래함과 동시에 평등한 가족사회 형성을 가로막아왔다.

일례로 호주제는 호주승계순위를 아들→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규정해 3살짜리 아이가 아들이란 이유로 어머니·할머니를 보호하는 호주가 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이는 남성에게 호주 승계의 우선권을 줘 남성우월주의는 물론 아들선호사상까지 낳고 있다.

또 재혼 가정·미혼모 가정 등 다양화되는 가족 형태를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혼한 여성의 자녀가 새아빠의 호적에 등록될 수 없어 새아빠와 성이 다른 데서 겪게 되는 혼란과 따가운 시선이 그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최정아 사회복지부장은 “호주제는 남성인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해 가족 구성원들을 종속시킨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에 기초한 민주적인 가족생활을 가로막고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호주제의 폐해를 지적했다.

정부와 시민단체·학자들은 이러한 호주제를 폐지하고 기본가족별 편제(가족부)나 개인별 신분등록제(1인1적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중 가족부는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 단위로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부는 기존의 호주제와 마찬가지로 가족공동체가 하나의 공문서에 기재돼 호주제 폐지 시 국민들이 겪을 혼란을 줄여준다.

그러나 부부 중심의 가족구성을 원칙으로 하므로 미혼모 가정·한부모 가정 등은 예외규정이 필요해 이들에 대한 차별 의식을 고착화시키고 이들의 가족사가 드러나 사생활 침해의 문제를 낳는다.

? 반면 또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1인1적제는 개인마다 새로운 신분등록부를 갖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미 유럽 등 인권선진국들이 실시하고 있다.

개인별 신분등록부에는 본인의 신분변동사유만 기재되고 그 배우자·부모·자녀의 신분변동사항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 준다는 이점이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1인1적제가 미래지향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개인별로 신분등록부를 갖는 것이 가족의 해체를 낳는다고 오해하는 국민들이 많다”며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볼 때 1인1적제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방식으로 가족부에 대한 검토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아직도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국민들의 반발로 호주제 폐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최정아 사회복지부장은 “개인별로 신분등록부를 갖는다고 해서 가족해체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의아스럽다”며 국민들의 의식개혁을 위해서 사이버 홍보·토론회 개최 등 대대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호주제 폐지는 정부의 결정이 아닌 결국 입법 활동을 하는 국회의 몫”이라며 “국회의원들의 의식개혁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때는 직접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의원 발의를 시킬 것이며 16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국회의원선거 후보자를 당선시키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부 역시 각종 정부 인쇄물·지방자치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호주제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호주제 폐지를 위해 발벗고 나선 가운데 일반 국민들의 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호주제 폐지는 우리 모두가 합리적인 법안에서 평등한 가족사회를 이뤄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첫 단계다.

새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신분등록제’를 실행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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