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압류 등 노동자 탄압… 파업이 죄가 되는 법부터 고쳐야

어느 날 회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갑자기 길거리로 나앉게 된 노동자들은 협상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하자 결국 파업을 감행한다.

이처럼 파업 동기는 어느 나라나 똑같이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다.

어떤 나라는 국민적 지지 속에 노사 합의가 이뤄지고 어떤 나라는 협상은커녕 징계·구속에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손배소송)과 가압류 처분이 내려져 노동자의 숨통을 조인다.

대부분의 유럽 노동자가 전자에 속한다면 후자는 바로 한국 노동자의 현실이다.

× × × “처음 가압류당했을 땐 어이없고 황당했어요. 내 임금과 퇴직금뿐만 아니라 신원보증인이었던 친청 오빠의 집까지 가압류당했거든요. 아이들도 있는데 참 막막해요.” 지난 2001년 7월 공장 이전문제로 파업을 감행한 한국 시그네틱스 노조원 김칠순씨의 탄식이다.

총 1억5백여만원의 가압류 처분을 받은 그는 한동안 오빠 보기가 미안해 연락할 수도 없었고 형제들과의 관계까지 소원해졌다.

비단 김칠순씨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발전소 해외매각에 반대해 진행된 발전노조파업의 경우 가압류 액수는 계산도 안될 정도다.

남동본부 위원장 등 노조간부 4인에게 1인당 102억원을 청구하는 등 총 17명에게 1184억원의 가압류 처분을 내렸다.

또 전 장은증권 노조위원장 박강우씨는 13억3천만원의 손해배상도 모자라 신원보증을 섰던 가족의 집·선산까지 가압류당했다.

이들이 가압류·손배소송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파업으로 인해 사업자가 손해를 봤으니 이를 배상하라는 것. 그러나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돼 있듯이 파업은 명백한 노동기본권 중 하나”라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김갑배 변호사의 말처럼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이며 자신의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과거에는 파업시 노조와 주요 간부에게 형사소송 등의 노동탄압을 가했지만 노동탄압에 대해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가압류·손배소송 등 합법적인 민사소송으로 교묘히 탄압 방법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른바 ‘신종 노동탄압’이라 불리는 손배소송과 가압류는 이미 유행처럼 확산돼 노동자에게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1월까지 가압류와 손배소송 청구액은 50개 사업장 2천여억원을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6월에 비해 무려 2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가압류와 손배소송이 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사측이 노조간부 몇 명을 형사처벌하는 것보다 경제적 약자인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부여하는 것이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분개했다.

실제로 발전노조 파업의 경우 파업기간 중 조기 복귀한 400명에게 선별적으로 가압류를 해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가압류와 손배소송 문제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우리 학교 이철수 교수(법학 전공)는 “사실상 가압류·손배소송은 합법적인 파업일 경우에만 취하될 수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파업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법원이 대체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당한 파업이 드물다”고 말한다.

김갑배 변호사는 “가압류와 손배소송이 불법파업에만 적용되는 만큼 현재 불법파업을 부당하게 확대해석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구속과 같은 형사처벌의 경우 확정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가압류와 손배소송 등의 민사소송은 신속하게 이뤄지고 절차도 간단해 사측은 이를 유리한 노동탄압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률 개정과 더불어 파업에 대한 국민 의식의 개선도 필요하다.

영국 소방노조 파업 때 국민 지지율이 55%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영국 언론은 이들의 파업을 호도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노동자의 권익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합의가 자연스레 형성돼 건전한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었다.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중략)…이틀 후면 급여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라는 유서만을 남기고 얼마전 분신한 배달호 열사. 가압류와 손배소송 등 신종노동탄압이 계속되는 한 그의 죽음이 ‘예비노동자’라 일컬어지는 우리들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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