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산업연수생 제도하에서 노동력 착취 심해…불법 체류자의 멍에 지기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소의 표적단속에 걸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강제 구금돼야 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 꼬빌씨와 비두씨가 수감 80일 만인 11월20일(수) 풀려났다.

이들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외국인보호소에서 신체의 자유 침해·비인간적인 대우·전기고문 등 인권을 유린당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인권침해·노동력 착취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주 노동자 문제는 산업연수생제도가 원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기 호조로 인력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88올림픽 이후 외국인력 유입이 증가되면서 정부는 94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가 관리·운영하도록 산업연수생제도를 만들어 외국인 연수생을 유입한 것. 이 때 중기협이 연수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불법 브로커들이 난립하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선 수천만원의 송출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만명의 연수생과 28만명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공장 또는 건설현장 등 많은 산업체에 분포돼 있는 상황이다.

산업연수생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지부 이연주 지부장은 “이들은 현장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한 채 최저임금에 가까운 40∼60만원의 연수수당만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불법체류자는 근로기준법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월급도 연수생에 비해 2∼3배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은 산업체를 이탈, 불법체류자를 자처하는 상황이다.

이는 전체 이주 노동자 중 90%가 불법체류자임이 이를 대변해준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연수생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력을 착취하는 곧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김해성 공동대표의 지적처럼 그 동안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산업연수생제도 철폐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 11월18일(월) 정부는 산업연수생을 기존 8만명에서 14만5천명으로 늘리고, 내년 3월까지 강제 출국시킬 예정이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 가운데 국내 체류기간이 3년 미만인 근로자에 한해 강제출국 시기를 최대 1년 유예시킨다는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불법체류 자진신고를 한 사람은 25만 5천여 명. 정부는 이들을 강제 추방한 후 다시 산업연수생으로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김해성 대표는 “25만 5천여명의 인력공백을 한 순간에 채우기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늘어난 산업연수생들은 또다시 산업체를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돼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개선방안을 비판했다.

이연주 지부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더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외엔 아무 효과가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다.

한국에 들어온 지 6년 째인 꼬빌씨는 정부의 개선방안에 대해 “열심히 부려먹고 나서 내쫓는다는게 말이 돼냐”며 반발했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노동자들도 천만원씩이나 하는 송출비용도 다 갚지 못한 상황에서 내쫓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산업연수생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중기협의 로비와 반발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연주 지부장은 “실제 중기협은 연수생을 사업체에 배정할 때 300만원 정도의 이행보증금을 업체에 부가하는데 연수생이 이탈할 경우 그 돈은 중기협에 귀속된다.

또 각종 업체들이 송출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로비자금을 쏟는 등 중기협이 얻는 이익은 실로 막대하다”고 말한다.

각종 시민·사회단체가 이번 개선방안을 미봉책이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박해성 대표는 “이주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처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노동비자 신설·노동3권 보장·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 도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실제 불법체류자율이 90%를 넘었던 대만은 고용허가제를 도입해 3%로 그 비율을 낮췄으며 싱가폴 역시 30%에서 3%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오는 18일(수)은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한국 땅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이날이 축제의 시간으로 기념 될 날은 언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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