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뜨거운 햇빛과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 피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나무 그늘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듯 묵묵히 서있는 나무는 그러나 그 그늘을 만들기 위해 무수한 세월 거센 비바람을 견디며 끈질기게 생존해 왔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이런 ‘나무 그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가수 홍순관씨. 그가 사회문제를 노래하게 된 것은 8년 전 우연히 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정신대 문제를 듣게 됐을 때다.

“내 앞에 역사가 살아 있구나! 왜 현실은 이들이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70세가 넘도록 공식적인 위로나 보상 한번 못 받고 십여 가지의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회문제를 노래하는 가수로 만들었다.

94년부터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금운동으로 ‘대지의 눈물’이란 공연을 해 온 홍순관씨는 울릉도를 비롯해 남한 구석구석은 물론, 미국·일본까지 마다하지 않고 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일본 민간단체가 종군위안부 할머니 한 분마다 보상금 3천만원을 제시하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을 때 그는 가슴이 꽉 막혔다.

“절대 받으시면 안 됩니다.

받으면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생활고에 지친 그들이 행여라도 투쟁을 포기해 역사가 그대로 묻혀지게 될까봐 다급해진 그는 모 방송국을 찾아가 광복절 특집 프로그램으로 정신대 문제를 다뤄줄 것을 제안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국민적 관심이 높아져 ARS 모금 등을 통해 많은 돈이 모아졌다.

일본의 위로금 43억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자신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그는 잊지 못한다.

정작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한국 정부의 무관심에 홍순관씨는 이를 꽉 물어야 했지만 이 일로 자신이 노래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의 현재 활동은 종군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운동에만 그치지는 것은 아니다.

8월말부터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물리치고자 부산·제주 등 전국 49개 도시를 순회하며 ‘잘가라! 지역감정’ 콘서트를 하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시인과 음악인들의 모임 ‘나팔꽃’에서 기획한 이 공연은 10월 중순경에 끝날 예정이다.

이 공연이 끝나면 통일을 위한 공연을 구상할 것이다.

“남북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도록 나같은 사람이 정치는 못해도 통일을 노래하는 것쯤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렇듯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청을 돋우며 많은 활동을 해 왔지만 홍순관씨는 번듯한 개인 음반 하나 갖지 못했다.

“히트곡 같은 데 미련 없어요. 있었으면 벌써 대중음악 했죠.” 단지 자신의 노래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음악을 한다는 그는 묵묵히 외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도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으리라. 사람들이 슬픈 역사, 암울한 현실과 맞서 싸우는 그의 고충을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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