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고 받아 적으세요, ‘나는 공장에서 일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은 열심히 받아적는다.

언뜻 초등학교 저학년 받아쓰기 시험시간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학생들은 다름아닌 이주노동자들이다.

서툴지만 또박또박 받아적는 이들의 한국어 실력 뒤엔 든손이 있고, 든손 뒤엔 이의주씨가 있다.

순우리말로 ‘망설임 없이 곧’을 뜻하는 든손은 한국외대 한국어교육과 학생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기 위해 만든 동아리다.

으레 약속으로 차 있을 법한 일요일 오후 2시. 이의주씨는 학회를 그만두면서까지 꼬박 3년 동안 이 황금같은 시간을 든손에 쏟아부었다.

오죽하면 4년째 든손에 출석한 미얀마인 쩌땐 씨(38)는 “의주 선생님은 몸이 아파도 꼭 나와요”라는 평을 내릴까. “사실 예전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던건 아녜요” 선배들의 소개로 우연히 시작한 활동이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학생들의 순수함이 그를 든손의 회장으로 이끌었다.

“수업시간에 교탁 앞에 꼭 음료수가 놓여져 있어요. 그분들 월급이 적기 때문에 안사도 된다고 말리는데도 고마워서 그런다고…”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은 음료수에 그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함께 주고 받고 작년엔 학생들이 없는 월급을 쪼개서 산 비싼 디지털 카메라까지 기증했다.

이런 이들의 마음을 대할 때마다 이의주씨는 힘이 솟아 가르치는 일을 결코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한다.

“시중에 나온 한국어 교재들은 유학생을 위한 것이라서 이주노동자들이 흔히 접하지 않는 말들이죠. 공장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찾아 직접 교재로 만들고 있어요” 또,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한국어 수업시간에는 택견, 윷놀이도 함께 하고 요리도 같이 하는 등 ‘문화수업’을 통해 한국문화를 체험케 한다.

지난 설에는 홀로 명절을 보내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명절음식을 나눠먹기도 했다.

그는 든손에서의 3년동안 몰라보게 변화한 자신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60만원 가량의 박봉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고향으로 송금하는 이주노동자를 보고 가족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배웠고 낯선 나라,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일하면서도 즐겁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고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단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얼마 전만 해도 겨울에는 온풍기 가동이 안돼 빨갛게 언 손을 녹여가며 수업했고 학교측의 비협조로 교실 빌리기도 힘겨웠다.

그러나 정작 그를 안타깝게 만든 것은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곱지않은 시선이다.

아직도 부모님께 이주노동자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속여야 하는 후배,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국인의 고발로 강제출국될 수 밖에 없던 학생. 모두가 그 시선이 빚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신을 향한 편견속에서 한국인을 미워할 법도 하지만 “든손 선생님들을 보면 한국인들 좋다”는 이주노동자의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단다.

“이주노동자들을 대할 때 편견을 갖고 바라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다들 착하고 순수한 분들이거든요” 마지막까지 당부의 말을 챙기는 이의주씨. 그가 있기에 이방인들은 다가오는 추석이 외롭지만은 않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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