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한·미 SOFA 적용 시 공무중 범죄 수사 불가

일시: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6월13일 장소: 경기도 양주군 56번 지방도로 상황: 3.3m 폭의 한적한 도로 위를 두 여중생이 손잡고 걷는다.

난데 없이 들려오는 탱크 소리에 힘을 다해 뛰지만 역부족이다.

(잠시 후) 도로 위에 납작하게 일렬로 깔린 두 여중생. 그들의 뒤로 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탱크 너비는 3.65m다.

× × × 이번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많은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군이 사건 해결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자 한국정부는 7월10일 미군 측에 이 사건에 대한 재판권 이양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미군은 공무수행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넘긴 전례는 없다며 거절해 사건 발생한지 두 달이 훨씬 지난 현재, 숱한 의문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이번 사건의 주용의자인 미군 운전병은 신변 안전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이처럼 미군 범죄에 한국인의 인권이 짓밟히고 대한민국의 주권이 무시된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92년 10월 경기 동두천에서 질부에 우산이 꽃혀진 채 미군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윤금이씨 사건, 2000년 7월 파주의 미군기지 근처에서 고압선에 감전돼 6월에 사망한 전등록씨 등 미군의 비 공무중 범죄만 해마다 500∼600건에 이르지만 형사처벌된 미군은 단 한 명도 없고, 공무중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이 재판권을 넘겨받은 적도 없었다.

이 모든 문제는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한·미 SOFA)으로 귀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이병희 간사는 “한·미 SOFA 제22조 형사재판권에서 공무중 범죄에 관해서는 미군에게 1차적 재판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이 공무집행중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하면 한국은 수사권도 발동할 수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군 범죄가 발생했을 때 공무중이었는지 여부를 미군 당국이 아닌 일본 법원이 판별할 수 있게 된 미·일 SOFA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또, 미·일 SOFA는 범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기를 기소시점으로 명시하고 있는 반면 한·미 SOFA는 비공무중 발생한 살인·강도 등 12개 중대범죄에만 이같이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나머지 경범죄나 공무중 범죄에 대해서는 범인을 재판 후 한국 측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해 범인의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위험이 크다.

이밖에도 한·미 SOFA는 무죄 판결이 난 경우 상소하지 못하도록 규정, 검찰의 상소권까지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건과 관련, 60여개의 시민·여성·언론 단체들로 구성된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여중생 대책위)’는 한·미 소파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각지에서 서명운동 및 캠페인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8월26일)까지 여중생 압사사건의 진상규명과 소파 개정을 위한 모금액이 7천만원 이상 모아졌고 서명운동도 40만이 동참하는 등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편,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간사는 “모두가 SOFA 개정에 절실히 공감하는데도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여중생 대책위 이시내 사무국장은 “책임자 처벌을 위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제2, 제3의 효순이·미선이가 다시 생길 수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불공정한 SOFA를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상지대 홍성태 교수(사회학 전공)는 “시민들은 정부의 비겁함을 비판하는 동시에, 무능한 한국정부를 통해서 요구를 관철시키기보다 미국정부를 상대로 직접 싸워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 소녀가 미군에게 성폭행 당했다.

이에 10만 일본인이 모여 규탄집회를 갖는 등 강력하게 항의해 당시 클린턴 미대통령의 공개사과까지 받아냈다.

우리의 짓밟힌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국민의 저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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