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일생을 바쳐 농촌계몽에 헌신한 모습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1909∼1935)은 바로 ‘상록수’ 채영신의 실제 인물이다.

1909년 함경남도 덕원에서 태어난 최용신은 1928년 협성신학교에 입학해 황에스더 선생의 영향으로 농촌계몽운동에 대한 열정을 싹틔운다.

졸업을 앞둔 그가 YWCA에서 농촌에 파견할 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화성군 샘골로 간 것이 그의 농촌계몽운동가로서의 삶의 시작이다.

최용신이 처음 샘골에 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부모들은 “우리집 아이들은 나무를 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아이들을 공부시키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부모를 설득시켰다.

그는 이렇게 모은 40여명의 학생들에게 예배당을 빌려 낮에는 한글·성서 등을 가르쳤고 밤이면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의 열정에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됐다.

주민들의 신임을 얻게 됐지만 재정난이 닥쳐왔다.

YWCA에서 보내주던 지원금이 반으로 줄어 임시학교가 문을 닫게 된 것. 최용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정식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점심을 굶으며 일일이 산골마을을 방문해 기금을 모았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32년 샘골학교가 문을 열게 된다.

농촌계몽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6개월만에 각기병을 얻어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그는 ‘죽어도 샘골에 가서 죽자’는 생각으로 샘골로 돌아가 밤낮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러던 차에 병세가 악화된 최용신은 1935년 1월23일 수원 도립병원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는 농민에게 희망과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농민과 함께 한’ 운동가로 기억된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