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운동가 고 최옥란 열사 민중복지장 무산

3월28일(목) 오전9시30분 시청 앞. 고 최옥란 열사(36·여)의 영정을 단 운구차와 이를 뒤따르던 자동차 10여대가 경찰에 2시간째 둘러싸여 있다.

차에 타고 있던 유가족과 사회단체 회원들은 버스 앞문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경찰들 때문에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던 고 최옥란 열사는 정부의 비현실적인 복지정책에 맞서 싸운 장애운동가로, 26일(화) 오전4시 심장마비로 숨졌다.

최옥란 열사 장례위원회(장례위원회)는 28일(목) 오전6시30분 한강성심병원에서 발인을 마치고 명동성당 들머리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중복지장을 지낸 후 경기도 고양군 벽제화장장에서 시신을 화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측은 “장애인 이동권 연대가 유족을 이용, 불법 시위를 하려 한다”는 이유로 장례 행렬을 막았고 결국 2시간여의 대치 끝에 운구차는 오전9시40분 벽제화장장으로 향했다.

장례위원회는 오전11시 명동성당 앞에서 ‘최옥란 열사 민중복지장 원천봉쇄 및 경찰의 불법노상구금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살아서도 보장받지 못한 장애인 이동권은 죽어서도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장례행렬을 막은 경찰을 비판했다.

생계비를 벌기 위해 청계천에서 노점상을 하던 고 최옥란 열사는 지난해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가 도입되면서 노점상을 접어야 했다.

소득이 월 33만원 이상이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그러나 수급 대상자로서 받게 되는 돈은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26만원.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그에게 이는 한 달 약값과 맞먹는 금액이었고 그는 영구임대아파트 비용 외 기타 생활비로 한 달에 30만원씩 빚져야 했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약값·병원비 등 추가 지출이 있는 장애인·노인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비용은 월 15만8천원이지만 고인이 생전에 받은 장애수당은 겨우 4만5천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며 작년 12월 정부종합청사에 생계비 18만원과 수급권을 반납하고 명동성당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텐트 농성을 벌였다.

또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작년 2월 서울역 지하철 선로 점거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약 한 달 전, 자살을 기도했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이지은씨는 “고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국민기초생활법의 허상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하며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 맞서 투쟁했다는 점에서 그는 최초의 장애해방운동열사로 기억될 것”이라고 그의 생이 갖는 의미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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