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페미니스트 김일엽

‘정조관념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항상 새롭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 -‘신정조론’ 중에서 개화가 어느 정도 진행됐지만 성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1920년대. 김일엽(1896∼1971)은 당시 ‘정조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신정조론’을 주장해 성해방운동을 펼친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다.

그는 1920년 여성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창간, 최초의 여성 주간이 된다.

「신여성」 2호에 실린 그의 글 ‘신여자 선언’은 여성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신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여권선언의 효시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잡지 「폐허」, 동아일보에도 성 해방에 관한 많은 글을 발표했다.

그의 글 ‘여성의 재혼론’은 ‘남자는 처녀·비처녀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고 여자도 한 남자와 부부생활을 유지하지 못한 여자를 경멸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 여성의 재혼에는 어려움이 많다’며 당시 여자들이 전통적인 성 규범에 얽매여 있는 것을 비판하고 여성의 재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주장은 당시 조선사회를 지배해왔던 정조관념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편 김일엽은 여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복식개혁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한복이 여성의 활동을 제약한다며 위생·예의·자태를 개량 의복의 조건으로 내걸고, 이를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을 뿐 아니라 만드는 법을 알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930년 승적에 이름을 올린 후 수덕사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김일엽은 1971년 76세의 나이로 입적(승려의 죽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한다.

그가 사회제도와 자신의 가치관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교에 귀의한 사실에서 당시 여성을 억압한 사회구조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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