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장차현실씨

빌딩 숲과 자동차 행렬은 버스 안 아주머니들의 구수한 입담 속에서 멀어져 가고 버스는 두 물줄기가 산 아래 안겨있는 곳, 양수리에서 멈췄다.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뒷마당과 텃밭에 둘러싸인 아담한 집이 만화가 장차현실씨와 열네살난 다운증후군 딸 장은혜양이 사는 곳이다.

이사온 지 2개월도 안됐지만 모녀의 시골 생활은 대만족이다.

편견에 찬 눈길로 은혜를 바라보던 도시 사람들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은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장차현실씨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한 달에 20편이 넘는 단편만화를 그린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일이 좋기 때문에 만화를 택한 것. 하지만 그가 그리는 만화는 다른 만화가들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만화는 ‘장애’와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문제들을 만화로 그리게 된 데는 딸 은혜 덕이 크다.

은혜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경직된 사고방식에 갇혀있는 사람’이었다는 장차현실씨. 그래서 장애아를 낳고 절망한 나머지 아이와 함께 죽을 결심을 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러나 그는 은혜를 통해 장애를 다양한 모습의 하나로 받아들일 결심을 했고 지금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보통 아이와 다르게 생각하느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세상은 180도로 달라지죠. 정작 장애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 은혜는 장차현실씨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셈이다.

장애인 딸을 둔 엄마로서 느꼈던 그의 생각들은 책 ‘편의시설 만화로 보기’에 녹아 있다.

장애인들의 버스·지하철 타기, 친구 사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장애인의 눈’으로 그려냈다.

삶을 바라보는 그의 열린 시각은 페미니스트 저널 ‘IF’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올해로 여섯돌을 맞는 그의 만화 ‘색녀열전’에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부부생활을 하며 느끼는 어려운 현실 등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두 식구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면 인터넷 한겨레의 하니리포터 연재만화 ‘장현실의 현실을 봐’를 클릭해 보자. 방귀를 뀌며 자는 딸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엄마, 시골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삶 등 모녀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솔직함 속에도 도시 삶의 삭막함, 획일적인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 등 그가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는 살아있다.

그가 만화를 통해 자신의 은밀한(?) 생활까지 그대로 보여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 세상엔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엔 여러 고비가 있게 마련이에요. 그 고비들을 경직된 사고로 대처하려는 사람은 쓰러지고 말겠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만화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장차현실씨. “만화는 내 생각을 전달해 주는 좋은 기구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생긴다면 주저없이 만화를 포기할 겁니다.

”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내 여유있게 웃을 줄 아는 그녀의 모습에서 싱그러운 ‘자유’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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