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이미지 〉 노점상 생계?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똑같은데 죽자는 각오로 한판 붙읍시다.

” “다같이 한판 붙자!” 지난 14일(목) 오후1시 신촌 현대백화점 뒷편 놀이터는 ‘월드컵 노점단속 분쇄를 위한 투쟁 선포식’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노점상인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장사를 하루 ‘공칠 각오하고’ 이곳에 모인 이유는 월드컵을 맞아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정부로부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정부는 2월말 이미 지역별 노점 수 파악을 끝내고 철수 경고 및 강제 단속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시청은 늦어도 월드컵 전까지는 종로·신촌 등의 노점상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88년 서울올림픽·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국제적인 행사가 열릴 때마다 자행된 정부의 전시행정으로 빈민들의 생존권을 탄압하는 졸속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구에서 의류 노점상을 하는 이모씨는 “IMF 때 사업에 실패하고 부인과 노점상을 운영하지만 두 아들 대학 등록금 벌기도 빠듯하다”며 “우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장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신촌 명물거리에서 분식노점상을 하는 강료장씨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노점상 밖에 없다”며 “이것조차 못하게 한다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 최인기 사무처장은 “노점상인의 대부분이 이를 금지할 경우 당장 생계의 위협을 받는 빈민들”이라며 “국제 행사도 좋지만 이 때문에 민중의 생존권이 박탈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나 인도 등 많은 나라에서는 노점상이 합법화돼 있어 외국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 온지 9개월 된 Terry Park씨는 “개인적으로 레스토랑 음식보다 노점상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며 “한국 고유 문화를 없애려는 한국정부는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불법 노점상의 남발로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단속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서울시는 이달 말부터 버스정류장·지하철역 등 시민들의 통행에 직접적으로 불편을 주는 노점을 중심으로 단속할 계획이다.

서대문구청 도시정비과 가로정비계 이종원 계장은 “시민들의 빼앗긴 보행권을 찾아주기 위해서 통행인구 밀집지역의 노점상을 단속하는 것이지 월드컵 때문에 갑자기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고양시청 도로건설과 행정7반 이명성 계장은 “하루에 10건도 넘는 민원이 들어와 단속할 수밖에 없다”며 “단속하는 데 있어서 생계형노점과 한 달에 몇 백만원씩 버는 기업형노점 사이에 융통성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백억도 넘는 용역반 기용 비용이면 노점상과 노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어느 노점상인의 절박한 목소리는 외면된 채, ‘대외 이미지 쇄신’의 그늘에 가려 민중의 생존권은 또 다시 짓밟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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