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제도 도입 논의의 배경과 필요성 점검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 가야만 하는 곳으로 간주됐던 군대에 ‘양심’이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해 12월 불교신자로는 최초로 오태양씨가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고 신문과 잡지, TV 등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해 재조명하는 등 이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4일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연대회의)’가 출범해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입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본인의 양심상의 이유로 집총 등 살상과 관련된 모든 일을 거부하는 행위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분단이라는 현실 하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라 입대를 거부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과자가 돼야만 했다.

국방부도 현재의 안보환경과 징병제도 하에선 병역거부 행위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역사학 전공)는 “양심의 자유도 존중돼야 할 엄연한 인권”이라며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개인의 양심을 보장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양심적 병역거부의 당위성을 밝혔다.

UN 인권위원회도 9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사상·양심·종교적 자유에 근거한 기본적 인권 중 하나’라는 결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안책으로 제시된 것이 정부 기관이나 복지기관에서 군 복무 기간보다 긴 시간동안 군 복무를 대체할 만한 활동을 하는 대체복무제도다.

1922년 노르웨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등에서도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등 이미 유럽에선 양심적 병역거부가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인구대비 군사규모가 비슷한 분단국가 대만이 2000년에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사법계에서도 불고 있다.

지난 1월29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 이경수씨가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자에게 대체복무제도의 기회를 주지 않고 처벌조항만 둔 현재의 병역법은 헌법의 기본권 보장 정신에 위배된다’며 재판부에 낸‘위헌법률 심판 제청 신청’이 받아들여져 현재 관련조항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조건 3년의 실형을 선고했던 예전과 달리 1년6개월의 형을 선고하는 것도 변화 중의 변화다.

인권운동사랑방 이창조씨는 “최소한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병역을 면제받게 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향상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의 시선, 특히 남성들의 시선은 냉담하다.

군대를 다녀온 직장인 안모씨는 “개인적인 문제를 국민의 의무보다 우선시한다면 국가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고 입대를 앞둔 대학생 최모군은 “대체복무제는 병역 특례제도의 확대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연대회의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은 “대체복무제 일 자체가 힘들고 기간도 군 복무기간보다 길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에 따르지 않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만의 경우, 첫 해엔 모집 정원이 초과됐으나 대체복무자들의 생활이 힘들다고 알려져 다음 해에는 지원자가 미달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또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한홍구 교수는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비합리적인 군대문화를 청산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며 “군생활 부적응자들이 저지르는 자살·폭행 등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복무기관에 군인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의 서비스도 향상되는 등 군이 민주화될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그는 덧붙인다.

‘국민의 의무’ 앞에 수십 년동안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개인의 양심’. ‘옳고 그름’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개인의 내면의 목소리에 이제는 귀를 귀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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