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투쟁 동안 조합원들을 위해 시장에 내다버린 채소를 다듬어 국을 끓이고 ‘밥’을 했던 노조식당 아줌마들. 투쟁의 ‘꽃’이라고 불렸던 그들이 결국 정리해고의 희생‘양’이 되고 원직복직을 위해 단식농성을 벌이기까지, 그들의 아픔을 렌즈 속에 생생히 담아낸 사람이 있다.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식당 아줌마들의 투쟁을 그린 여성노동자영상보고서 ‘밥·꽃·양’의 임인애 감독을 만났다.

“사실 지금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단식 농성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공식없는 싸움이라 더 힘드네요.” 노조운동 내에서 성적 소수자로서 당하는 고통과 노조 운동진영의 내면화된 위계 질서·권위 의식에 의문을 던진 ‘밥·꽃·양’은 10월로 예정돼 있었던 울산인권영화제에 상영될 계획이었으나 9월 초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갑작스런 사전검열 요구로 ‘밥·꽃·양’ 제작팀 라넷은 상영을 거부했다.

문제제기의 실체와 경로는 밝혀지지 않은 채 아직까지 무수한 논쟁이 진행 중인 상태. ‘작품은 만들지 않아도 끝까지 싸울’ 정도로 ‘밥·꽃·양’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강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난 상태와 우울, 속앓이 상태가 겹쳐진 느낌을 봤어요.” 또 ‘파업하나 보다’하고 무심히 찍다가 그 속에서 다른 흐름을 읽게 됐다고, 이건 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래서 98년 파업 투쟁이 끝난 후, 2000년 식당 아줌마들의 원직복직 투쟁 현장까지 임인애씨는 그들의 자취를 밟았다.

“아줌마들이 저렇게 울고 있는데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나, 카메라 버리고 같이 싸워야 하나. 찍는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 임인애씨는 파묻힐 뻔했던 식당 아줌마들의 눈물겨운 투쟁일기를 숨소리 하나,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담아냈다.

그가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렌즈에 담아내기 시작한 것은 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내고 졸업 후에도 파업 현장에서 연극·마당극 등을 벌였다.

“공연도 좋았지만 조직이나 일상 업무로부터 자유롭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런 이유로 90년부터 조금씩 해왔던 영상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96년이었다.

연극이든, 다큐멘터리든 중요한 것은 ‘무엇을’ 표현하느냐의 문제라고 임인애씨는 강조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만나는 시선은 ‘아픔’과 닿아 있다.

“슬픔·희망 등 누구나 삶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전 그 중에서 아픔을 기록하고 싶어요.” 386시절을 지내왔던 터라 촌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계속 깨지고 밟히는, 그 순간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들이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중독Ⅰ’ 등 10여편이나 된다.

아직까지 ‘밥·꽃·양’은 완결되지 않은 진행형이다.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넣어 더 구체적이고 ‘불편한’ 영화를 만들어 나갈거에요.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끝까지 싸울겁니다.

” 물러설 수 없는 이 힘겨운 싸움에서 그는 아픔 안에서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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