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30일(월), 3년을 끌며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켰던 ‘국가인권위원회법(인권위법)’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23일(수) 대통령이 인권위법에 서명함으로써 오는 11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출범, 각종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인권교육 및 홍보·인권정책에 대한 권고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인권위법은 98년 처음 제정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줄곧 그 위상과 내용 문제로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을 받아온 바 있다.

73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도 그간 법안의 한계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벌인 바 있다.

법안 통과 후 대통령에게 ‘법안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기도 했던 공대위는 인권위설치가 기정사실화된 25일(금), ‘항의’의 뜻으로 해체하기에 이른다.

처음 쟁점은 인권위를 국가 산하 ‘민간 특수기구’로 둘 것이냐, ‘독립적 국가기구’로 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여기에는 인권단체들의 의견이 반영, 독립적 기구로서의 인권위는 예산편성과 시행령 제정에 있어 상당 부분 독자성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법안 곳곳에 위치한 ‘독소 조항’들로 인해 인권위법을 ‘실효성’없는, ‘허울뿐인 빈껍떼기 법안’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또 법안 통과과정에서도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법무부, 검찰 등의 이해관계가 작용해 본래 취지를 무색케했다.

무엇보다도 ‘실효성’문제는 가장 우선 지적되는 부분이다.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인권위에 진정을 하려해도 이를 원천적으로 막는 장치가 많다는 것. 특히 법안 32조를 살펴보면 수사나 재판이 진행중이거나 종결된 사안은 인권위가 다룰 수 없게돼 있다.

가령, 가해자·기관이 인권위의 조사 기회를 막으려 우선 수사부터 해버릴 여지가 충분하다.

또 피해자의 진정·고소로 수사가 시작되면 관할 수사기관에 이송해야 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단 수사에 들어갔더라도 물증확보에는 상당한 지장이 예상된다.

‘서면조사 우선’조항으로 가해자를 직접 신속히 만나볼 수 없기 때문. 원래 위원회제도는 ‘신속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것이지만 진술서 제출만 14일이 걸리는 방식이 과연 적절할까. 이광길 인권운동사랑방 자유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권력기관 종사자나 공무원들이 서면조사를 거친다면 증거 은폐, 대응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자료요청이나 동행명령권에 대한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인권위원회가 조사결과에 따라 단지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명령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연 얼마나 강제력 없는 권고를 받아들일까’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렇듯 많은 문제점을 지닌 인권위법은 앞으로 인권위 구성, 시행령 제정 등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인권위의 상임·비상임위원이 어떤 인사들로, 어떻게 꾸려지느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법관출신이나 정치인사가 독식하는 식이 아닌 인권의식과 실무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시행령을 통해 인권사각지대로 여겨지던‘다수인 보호시설’의 규정, 과태료 부과의 기준·절차 마련 등을 처리해야 한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가보안법 개정·부패방지법 제정과 함께 ‘3대 개혁입법과제’중 하나인 인권위법. 역사상 ‘최초’로‘인권’을 지키는 ‘보호장치’가 법적으로 마련됐다는 점은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듯 그 미래는 무조건 밝지만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대위 상임집행위원장이었던 곽노현 교수(방송대·법학)는 “법안은 말 그대로 종이일 뿐”이라며 “시행 후 지속적·단계적인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현실 기자 rulurala@ewha.ac.kr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