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를 겪어보지 못한 기자의 머릿속에 5.18은 자주 봐왔던 흑백사진 몇장과 ‘모래시계’의 장면들로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군사독재 정권의 군화발이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았다는 식의 얘기들로 그 때의 상황을 희미하게 떠올려 볼 뿐이었다.

광주에 직접 가보면 그 시절의 생생한 흔적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기대했던 것일까. 17일(목) 오전, 광주에 도착해서도 어렴풋한 느낌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곳곳에 걸린 5.18 기념 행사 현수막에서도, ‘그 때’를 얘기하는 택시운전사 아저씨의 경험담에도 그저 머리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제 5.18도 잊혀진 역사가 되버린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기자를 따라다녔던 ‘기대’와 ‘우려’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 날 저녁 광주역에서 열린 ‘5.18 정신계승 및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노동자·농민·학생 총력 투쟁 결의대회’에서 본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집회나 기념행사에서 흔히 봐왔던 시민들의 무관심한 듯한 또는 약간 짜증섞인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로 나와 행진 대오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학생들이 나눠주는 팜플렛을 기꺼이 받아드는 그들. 행진 행렬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때 기억이 생생하지. 잊을 수가 없어”라는 한 아주머니는 21년 전 그 날을 다시 돌이켜보는 듯했다.

도청 앞 금남로에 다다르자 전야제를 보러 온 광주 시민들로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다.

길 가던 젊은이들은 행진 대오에 합류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80년 5월의 화약내 나는 불꽃 대신 횃불을 높이 들었다.

“그때 생각 나세요?” 횃불 시위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50대 아저씨는 목이 메여 고개만 끄덕이신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야제의 열기는 뜨거워만 갔다.

그 때의 아픔을 함께 나누러 모인 광주 시민들은 나이도, 삶의 모습도 다양하지만 그 자리에서만은 한마음이다.

유명 가수의 축하공연이 없더라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의 살던 고향을’ 등을 함께 부르는 시민들은 전야제의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었다.

‘강강수월래’에 맞춰 손을 잡고, 흥겨운 풍물 가락에 춤사위를 풀어내는 그들. 그날밤, 광주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남로 가득 채워 부르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간 열사들을 가슴 깊이 담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외침 속에 아픔의 5월은 자랑스런 5월의 모습으로 아직, 살아있었다.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