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목) 정오 광주 광산경찰서 앞. 정문 앞에서 수십 명의 경찰과 노동자가 대치 중인 그곳은 약간의 살벌함마저 감돈다.

바닥에 주저앉아 농성을 벌이는 50여명의 노동자 중 한 명이 답답한 듯 바닥에 벌렁 누워버린다.

이들은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화), 회사로부터 폭력 진압을 당했던 광주 캐리어의 사내하청노동조합 조합원들이다.

이 노조은 고용불안과 열악한 작업 환경, 턱없이 낮은 임금 등에 반발해 캐리어 공장 내 하청 노동자들이 지난 2월 결성한 것. 지난달 20일(금) 이들은 전면파업에 돌입하고 25일(수)에는 공장 일부를 점거했다.

8명이 심하게 부상당했던 1일(화)의 진압에서는 진압대에 캐리어의 정규직 관리 직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한 바 있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또다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들을 만나고자 5.18을 하루 앞둔 날 광주를 찾았다.

당시 차량이 통제된 광산경찰서 앞에서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정문을 에워싸고 있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2001년 5월 광주의 노동자 학살’포스터에 실린 폭행당한 노동자들의 사진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비참했다.

17일(목) 아침에도 조합원들이 용역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사무국장과 조직부장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바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다.

게다가 광산 파출소 경찰이 그 주위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일(화) 벌어진 폭력 진압으로 병원에 실려간 이경석 노조위원장 등도 다음날 새벽 경찰서로 연행됐다고 한다.

“이제 회사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억울해서 못떠나는 거지.” 근무한 지 세 달 됐다는 한 노동자의 한숨에서 깊은 분노가 배어나오는 듯 했다.

경찰서를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부상당한 노동자들이 입원해 있는 남광병원. 허름하고 어두운 병원 복도를 지나 노동자들이 입원해 있는 521호실에 들어서니 네 명의 조합원들이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한창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에 침대에 누워 있는 그들의 얼굴은 실제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인다.

곤봉으로 어깨를 맞아 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친 김태랑씨는 팔에 보호대를 착용한 채 고통스러워 했다.

“실수로 조금 다쳐도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합니다.

그대로 잘리는 거죠.” 항상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잔업이나 철야작업에 빠지지도, 지각도 못한다.

그들 몫을 용역회사가 중간에서 가로채는 터에 산재보험, 의료보험 혜택도 없다.

추석 때 받은 거라곤 만원도 안되는 ‘참치캔 한 세트’가 고작이었다며 “정규직 놈들은 100% 현금 보너스에 선물까지 받았는데…”라는 그들의 말에서 정규직 노동자와의 깊은 갈등의 골이 느껴졌다.

이런 차별은 임금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의 평균 월급은 64만원 정도. 하지만 정규직은 두달에 한 번 보너스와 가족 수당까지 받아 100만원은 거뜬히 넘어간다.

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은 두 배 이상 차이나는 게 현실이다.

캐리어에서 일한지 13일 됐다는 주성준씨는 정규직 되는 것까지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법대로 2년이 넘은 파견 노동자들만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되길 바랄 뿐이다.

다시 돌아간 광산 경찰서 앞에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폭력진압 규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어느새 파란 제복을 입고 있던 경찰들은 럭비복 같은 조끼를 하나 덧입었다.

“우리가 건설할 세상을 향해 앞으로”라며 투쟁가를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와 팔동작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이 힘겨운 싸움에 정규직 노동자는 더이상 ‘동지’가 아니었다.

2월 사내하청노조를 결성할 때만 해도 연대를 약속했던 정규직 노조가 지난 9일(수) 공식적으로 ‘연대중단 선언’을 했기 때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두려워한 회사측이 이들을 갈라놓으려 훼방을 놓은 결과다.

공장 점거 이틀째인 지난달 26일(목)에는 정규직 노조 위원장이‘정규직은 하청노조를 막아라. 공장을 지키자’라고 사내방송까지 했다.

“우리를 도와주면 회사 문 닫겠다고 그들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일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회사의 음모에 넘어가게 한 거죠.” 라며 최용호 대외협력부장은 씁쓸해한다.

그의 허탈한 웃음 너머로 경찰에 연행돼 있던 사무국장과 조직부장을 실은 앰블런스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몇십 명의 경찰들이 우르르 쫓아간다.

“동료들이 하나 둘씩 노동조합을 탈퇴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날 때가 참 힘들어요.” 파업 중에 생계는 어떻게 꾸려나가냐는 질문에 “그냥 집에 있는 거 떨어먹고 지내요”라는 망연자실한 듯한 그들의 대답.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에겐 한두 달의 파업을 버틸 경제적 여건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본의 기대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악으로 깡으로 묻어 심어!” 되풀이되는 그들의 외침 속에 광산 경찰서 앞의 하루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더이상 경찰서 앞에서 구호를 외치지 않고 그들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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