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대문을 열고 배추, 토마토 등이 심어진 텃밭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함성을 만난다.

“넓은 바다 만들어요!” 흙마당을 깊숙이 파고 페트병으로 물을 길어다 붓는 아이들. 운동화가 젖어도, 손발이 흙투성이가 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꾸밈의 여느 어린이집 실내와는 달리 흙냄새 나는 이 곳 실내에선 실내화를 신을 필요가 없다.

“우리 아이들의 멋진 작품이에요.” 덩더쿵방 한울이 선생님(원래 이 곳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는다)이 아이들이 덕지덕지 물감칠해 놓은 벽면을 자랑스레 소개한다.

4년 전 북한산 자락 밑에 터전을 일군 ‘꿈꾸는 어린이집’은 전국에 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 중의 하나다.

아이들이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모인 부모들이 공동으로 출자금을 내 어린이집을 꾸린 것. “몽실이! 나 밥 더 먹을래.” 이 곳 아이들과 선생님은 서로 반말을 쓰고 별명을 부른다.

‘초코’, ‘딸기우유’, ‘돌꽃’…. 별명들도 다들 웃음이 난다.

위압감이나 권위 대신 친구같은 느낌을 주려고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쓰지 않는다.

“반말을 쓰다보니 아이들의 생각이 훨씬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라는 한울이(선생님)의 반말예찬론. 하루 일과도 빡빡하게 짜여진 계획 대신 오전에 북한산 주변이나 들판 등으로 가는 나들이와 오후의 역할·마당놀이 등 자유활동으로 이뤄진다.

이 곳에서는 한글이나 영어를 미리 가르치는 광경보다는 플라스틱 통을 들고 마당에서 모래놀이를 하는 풍경이 더 자연스럽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기 전에 먼저 강요하지 않는다는 게 선생님들의 생각이다.

또 남자·여자 아이의 구분도 애초부터 두지 않는다.

“치마 입고 오는 남자아이들도 있는 걸요.” 남자니까, 혹은 여자니까라는 이유로 활동에서 성역할을 고정짓거나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3∼7살짜리 아이들이 함께 노는 공간이라 크고 작은 다툼으로 어린이집은 늘 소란스럽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조언 몇 마디 외엔 싸움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게 의견 조율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들이 싸울 땐 큰 아이들이 옆에서 의견 조정을 도와주기도 해요. 이런 게 교사의 한마디보다 오히려 해결을 빠르게 하죠.”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둠’을 통해 ‘싸움이 났을 땐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등에 관해 함께 얘기하고 약속을 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몫. 얼마 전 열린 총회에선 ‘디지몬 비디오에 나오는 괴물은 왜 항상 착한 괴물과 나쁜 괴물이 있는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단다.

‘수군방’, ‘도글방’ 등 재미있는 방 이름도 아이들이 손수 지은 것이다.

이렇듯 강요나 구속 없는 자유로운 삶을 배운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도 적응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많이 한단다.

“우리 아이들 눈이 수업시간에 제일 초롱초롱 하대요.” 교과과정을 미리 다 배운 요즘 아이들과 달리, 꿈꾸는 어린이집 아이들 중에는 한글을 모르고 들어가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처음 배우는 것들이기에 흥미를 갖고 더 재미있어 한다는 것. “이거 우리가 키운 거에요.” 시루에 직접 기른 콩나물로 지은 ‘콩나물밥’을 쌀 한톨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 까무잡잡한 피부와 해맑은 눈을 가진 노란 대문집 아이들은 자연과 친구하고, 세상을 편견없이 바라보는 열린 꿈을 꾸고 있었다.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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