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서원 대표 김용운씨 인터뷰

한 시대를 풍미한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특히 7·80년대, 소위 ‘빨간 책’이라 불리며 젊은이들의 ‘교과서’ 노릇을 했던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에게서는?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답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요. 과거 유명했던 책이라면 당시 선배들의 경험이나 지식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을테니까 말이죠.”장백서원 김용운씨의 말에서 작년부터 해온 ‘빨간 책 모으기’의 의도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고대 앞 사회과학 전문서점인 장백서원은 지난 11월부터 인문·사회과학 서적, 학생 및 노동운동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 지금까지 약 2천여권 정도를 모았다.

언젠가부터 과거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고 해결됐나’를 알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 같다는 김씨. “쉬운 예로 등록금 문제나 학교와의 갈등이 있을 때, 선배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참고한다면 훨씬 수월할텐데….” 라며 우리의 ‘부실한 자료관리’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최근 들어선 논문 준비나 연구목적 뿐 아니라 단순한 관심으로도 그 시절 책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지만 대부분 절판돼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처음은 학내 동아리나 연구실을 돌며 먼지에 ‘묻혀있던’ 책을 수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점차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지던 중, 한 일간지에 ‘빨간 책을 찾습니다’란 기사로 나간 뒤에는 사람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방에서도 책을 보내왔고 유학을 가면서 책을 거의 다 기증한 이도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낡고 너덜해진 책도 대다수. 하지만 이들이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써 세대를 잇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선 그 가치가 결코 작지 않을텐데. 그러나 김용운씨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며 덤덤하다.

별로 큰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이번 일이 예전 자료를 정리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 것 뿐이라고. 95년부터 장백서원을 맡은 그는 고대 84학번이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던 중, ‘혹시 고대 출신인지’를 물었다가 “학력사회를 철폐합시다”란 뜬금없는(?) 대답과 함께 약간의 지적(?)을 받았다.

결국 대신 서점을 들어오다 인상깊게 봤던 포스터의 문구, ‘Everything you know is wrong’의 뜻을 물어봤다.

“말 그대로죠.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이 제도권 교육이나, 잘못된 시각을 강요하는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으니까…. 그게 틀렸다는 거에요.” ‘일한 만큼 정단한 댓가를 받는 사회’를 예전부터 바랐지만 아직은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며 그는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내세워 조곤조곤 따진다.

“진정 정부가 보호해줘야 할 사람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호 받는게 답답하죠.” 그리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닌데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던 그였기에 인터뷰 도중 목소리 한 번 높이지를 않았지만 요즘 대학생들 이야기를 할 땐, 약간 음성이 올라가는 것도 같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어제·오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못내 그 점이 안타까운가보다.

“예전 대학가는 그래도 치열한 고민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pc방·핸드폰·술, 이 세가지가 전부라 해도 과장은 아닐 듯 싶어요. 개인이 우선이니까요.” 자신의 대학시절이 너무 비교돼서일까. 이야기가 자꾸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음껏 읽지 못하던 책을 읽고 토론도 하면서, 그러다 뒷풀이로 술도 마시곤 했죠. 과연 ‘싸움을 통해 뭔가를 이룰 수 있나’싶기도 했고….” 시종 진지하던 그였지만 ‘집회에서 이쁜 여학생 봤다’며 친구들한테 자랑한 사연을 말할 땐 웃음이 번진다.

대학가 서점들이 운영난으로 하나·둘 문을 닫는 요즘이지만 장백서원은 나름의‘경쟁력’이 있는 듯 보였다.

김용운 사장의 경영 전략(?)은 ‘한 분야에 대한 흐름을 파악해 독자와 대화할 수 있고, 조언도 해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 책을 많이 읽냐고 물었더니 “핫도그 장사라고 핫도그 많이 먹는거 봤습니까”라며 썰렁한(?)유머를 던지는 그. 최근 보여준 장백서원의 ‘작은 노력’이 젊은이들에게 예전의 치열한 고민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가져다 줬으면 한다.

이현실 기자 rulurala@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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