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통일 문제를 학생들이 제기한 것은 1960년 4·19 혁명때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는 이때 나온 것. 5·16 군사 쿠데타 이후 6·70년대의 통일 논의는 전무하다 1988년에 이르러 다시 교류의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그 해 3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 김중기군과 부학생회장 후보 유재식군은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작성, ‘6·10 남북학생회담’을 판문점 또는 제3국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의 저지로 회담이 성사되진 못했지만 남북 대학생들은 각각 다섯·두 차례의 공개서한을 통해 대화를 나누었다.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임수경씨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차 평양에 간 것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1년, 드디어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대학기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해 7월, 서울지역 대학신문기자연합(서대기련) 방북취재를 위한 준비위원회 학생대표들은 북한 범민족대회 취재, 북한 대학생 의식조사 등을 내용으로 북한주민 접촉을 신청, 통일원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 북측 조선학생위원회가 그들과의 예비접촉을 제의해 마침내 8월12일 판문점에서 남북 대학생 6명의 만남이 성사됐다.

또 1992년 5월 제6기 전대협 출범식에서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원회’가 조선학생위원회와 국제전화를 통해 공식적 남북학생 첫 회담을 개최하는 등 이후에도 전화나 팩스를 이용한 통신 접촉이 이뤄져왔다.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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