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전정보 보호 시민행동’의 전개 및 의의

‘몇년 후 간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있군요’, ‘폭력성향이 다소 높은 편인데요’…. 당신은 이런 이유들로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도, 보험가입이 거부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런 정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출·이용된다면? × × × 최근 유전자 연구의 급속한 발전으로 혈액, 머리카락, 침 등만으로도 개인 유전정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됐다.

유전정보만 있으면 그 사람이 미래에 발병할지도 모를 질병뿐 아니라 키가 얼마나 클지, 비만 가능성에서부터 심지어 범죄성향이나 천재성향까지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놀라운 가능성과 함께 유전정보의 데이터베이스(DB)화 구축 및 그 이용·처리를 놓고 사회적 안전장치의 필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1월7일 보건복지부의 ‘미아찾기 사업’발표가 있은 후,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개인 유전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각종 시설에 보호 중인 아동과 이들을 찾으려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유전정보 DB화를 구축, 친자 여부 확인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대검찰청·한국복지재단·유전자검식회사 (주)바이오그랜드와 업무협약을 채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녹색연합·환경운동연합(환경련)·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는 1월 중순 ‘시민배심원’을 구성, 보건복지부 사업을 관련 법 제정 이후로 연기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또 이번달부터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사이버상에 인터넷 사이트(http://www.bioact.net)를 개설하는 등, ‘인간 유전정보 보호 시민행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서명과 함께 각종 종교·환경 단체들과 함께 지속적인 거리 서명운동도 진행, 4월 말경에 있을 임시국회에 ‘인간유전정보 보호법’제정에 대한 입법청원을 할 예정이다.

한재각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는 ‘미아찾기’자체는 공감하지만 그 방법상에서 다른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지극히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라며 “이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유전정보 수집을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유전자정보에 대한 공론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실정에서 갑작스럽게 이런 사업이 추진된 것, 사업의 진행상황 조차 공개되지 않은 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또 유전자 감식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공권력에 의한 개인정보 오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가기관이 중범죄가가 아닌 일반인의 유전정보를 소유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96년에도 검찰은 ‘범죄수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범죄자들의 유전정보를 수집하다 ‘반인권적’이라는 반발에 부딪힌 적이 있다.

게다가 이런 사업들이 ‘미아’나 ‘범죄자’ 등을 우선 대상으로 한 점에 대해서도 환경련 시민환경연구소 박태순씨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는 이들로부터 인권침해가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작년 기준으로 보험과 고용에서의 ‘유전자차별금지법’이 각각 42개주와 21개주가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를 물을 만한 안전 장치가 거의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유전정보는 악의가 아니라도 오·남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물론 유전자정보는 잘만 이용한다면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미리 질병에 대비할 수도 있고 유전병 치료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자신의 미래를 일찍 안다는 것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일까? 가령 60대 이상 노인에게서 주로 발병하는 알츠하이머 병의 경우, 10대 때 벌써 자신이 그 병에 걸릴 것을 알아버린 어린이는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조건 좋다’는 사고에 젖어, 그것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유전 정보. 이것이 인간의 삶에 진정한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법적·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유전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무조건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보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유용하게 잘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현실 기자 rulurala@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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