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노동부 퇴직자 모임’에 다녀와서

다소 냉기가 도는 작은 방. 어수선하게 놓여진 의자들과 허름한 책상 몇 개가 전부다.

그 곳에서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와 한 아저씨의 대화가 사뭇 진지한데. “네? 얼마를 못 받으셨다구요?” “그게 얼마냐면….” 매주 일요일 오후 서울 조선족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상담 풍경이다.

이 곳에서 작년 5월부터 조선족 노동자의 임금체불, 산재보상 등을 상담해 주는 ‘외국인노동자를 돕는 노동부퇴직자 모임’. 공무원에서 노동상담가로 변신한 61∼73세의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들이 이 모임을 꾸린다.

일요일 오후, 손주 재롱도 보고 산책도 다니며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법도 한데. 불법체류자라는 약점때문에 불이익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상담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일을 한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성과는 대단하다.

작년 5월부터 11월 말까지 상담 성공률이 45%, 받아낸 돈도 1억540만원이나 된다.

지난 번 한 조선족 노동자가 산재를 당해 자기 돈으로 치료비를 대다가 결국 이들을 찾아와 보상을 1150만원이나 받아냈을 정도다.

그러나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있다.

“이름도 주소도 모른 채 고용주 사진 한 장 달랑 가지고 오면 해주고 싶어도 일을 처리해 줄 수 없어 참 난감해요. 그럴 땐 저도 어쩔 수 없는데….” 또 흔히 파출부라 불리는 가사사용인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돼 돈 받기가 더 힘들다고 인천직업훈련원장을 지냈던 김주숙 할아버지는 말한다.

밥 좀 더 먹을라치면 눈치주고 돈 더내라고 욕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한 아주머니의 얘기, 일하다 다쳐 전신마비가 된 아내의 병원비가 없다는 아저씨의 한숨…. “내 할아버지 적만해도 우리도 다 조선땅 살았드래요. 먹고 살기 힘드니께네 어쩔 수 없이 건너간 거디. 어디 이게 한 핏줄 동포에게 할 짓이오?” 어색한 한국말로 털어놓는 조선족 동포들의 하소연은 같은 민족에게 받는 설움이라 그 슬픔이 더 짙다.

일부에서는 불법체류자를 왜 도와주냐며 나무라는 이도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든 아니든 일을 했다면 그 댓가를 받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라며 그들은 되묻는다.

조선족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3D업종직을 싼 값에 메꾸어 주는 건데 고용주들은 그 싼 임금조차 주지 않으려 하는게 현실이다.

“빨리 고용허가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근데 저 위에선 서로 싸움질하느라 국회에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아요.” 올해는 방도 좀 넓히고 회원도 늘려서 다른 이주노동자들까지 상담하고 싶다며 야무진 포부를 밝히는 그들. “불법 체류자가 사라지면, 그래서 고통받는 이주노동자가 없어지면 우리 일은 끝나는 거죠.” 이들이 한가한 일요일 오후를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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