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청소년 운동에 대해
학칙이라는 엄격한 ‘품질 검사기준’을 거친 아이들은 하나같이 짜맞춰진 듯하다.
행여 이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낫다간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인정사정 없는 가위질에 머리가 밤송이되는 수모를 겪을 수도, 벌점이나 체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진풍경(?)이 생소하지 않다면 우리 나라에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발·복장 제한을 비롯, 소지품 검사와 체벌 등 학생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들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교육현실. 그동안 청소년은 하나의 ‘인격’이라기 보다는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보호·규제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수십년 간 변함없던 이런 상황에 대해 얼마 전부터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난해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두발 제한 철폐 운동’. 이 운동은 ‘사이버 유쓰’,‘채널10’,‘아이두’ 등 안티 스쿨 사이트들이 뭉친 청소년 연대 ‘위드(WITH)’가 ‘두발 제한 반대 서명운동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면서 본격화됐다.
두발 제한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교육부가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 의견을 수렴해 각 학교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 운동은 미약하나마 작은 성과들을 거뒀다.
‘여학생 귀 밑 3cm, 남학생 스포츠형’으로 대표되던 두발 규제가 정도에 있어 조금은 완화된 점, 그 과정에서 학생·학교의 의사결정이 토론회란 형식을 빌어 이뤄진 점은 주목할만한 결과다.
지난 12월23일 정식 발족한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 중·고등학생연합(학생연합)’도 각 학교에 두발 관련 토론회나 학칙제정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등 두발 자유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인 바 있다.
지난 99년, 청소년 인권유린과 교육제도의 문제점에 공감한 학생들이 통신상에서 만나 시작된 학생연합은 현재 회원 수만 전국적으로 1600여명에 이르는 등 청소년 운동에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고근예씨는 기존 운동과 달리 “학생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제 권리를 찾기 위해 모인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며 집단행동을 통해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과거와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학생연합은 지난 12월부터 인권운동사랑방과 함께 진행 중인 ‘인권을 찾자, 교육을 찾자’란 캠페인을 통해 각 학교의 교칙을 수집·분석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학생연합 대표 장여진양은 “이를 통해 기존 학칙을 개선할 만한 대안제시가 이뤄져야겠지만 궁극적으로 학칙이 폐지되길 바란다”며 자율·자치 대신 통제가 우선시되는 분위기에 학생들이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 이런 양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두발 제한 철폐 운동’에만 너무 치우친게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다.
단지 ‘머리를 기르고 싶다’는 이유, 혹은 ‘반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통해 관심을 유도했다는 점에서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문제다.
또 아직까지는 청소년을 억압·통제하는 규제가 약간 완화되긴 했으나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학생연합을 비롯한 여러 활동이 소수에게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전교조 학생생활위원회 김경우씨는 “운동의 기반이 학교현장이나 학생회가 아닐 경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일반 학생들의 폭넓은 지지가 뒷받침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 청소년들은 변하고 있다.
‘입시’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삶을 유예당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현재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강압적인 통제는 통하지 않는다.
두발 제한 기준이 3cm에서 5cm로 늘었다고 그만큼 그들의 자유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보호와 제약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현실 기자 rulurala@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