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추우세요?” “매일 밖에 나와 있으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푸른 수의 밑으로 보이는 두툼한 잠바와 그의 평소 체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껴입은 옷들이 눈길을 끈다.

검붉게 얼어버린 얼굴과 갈색 뿔테 안경 너머로 충혈된, 그러나 살아있는 눈. 정치수배해제 농성단장 진재영씨는 기자가 세번째로 명동성당을 찾은 그날도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한국통신 노조 집회 이후 성당 측이 천막을 강제철거하는 바람에 그들의 싸움터는 한 평 남짓의 감옥 두 개와 책상 하나가 전부다.

최근 신문과 TV, 라디오 등에서 감옥 농성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막상 찾아간 농성장은 예상 외로 스산했다.

뭐 부족한 건 없냐는 질문에 “네, 없습니다”라며 씩씩하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서글프다.

명동성당 길목에선 푸른 수의를 입은 몇 명의 사람들이 추위도 잊은 채 전단지를 나눠주고 서명을 받으러 바쁘게 뛰어다닌다.

5분이면 손발이 꽁꽁 얼어버리는 추위, 그 추위에 얼어버린 볼펜잉크처럼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버린걸까. 간절히 내미는 서명 부탁에 ‘손이 시려워서 못하겠어요’라며 귀찮은 듯 가버리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 감옥은, 푸른 수의는 무섭고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처음 입어보는 수의와 차가운 감옥바닥은 낯설기만 했다.

나무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의 햇살이 놓을 수 없는 희망의 크기일까. 발뻗고 눕기도 힘든 좁은 공간이지만 한 평 감옥보다 훨씬 넓은 세상 또한 그들에겐 감옥이다.

창살 너머 보이는 성모마리아의 두 팔 벌린 품도 결국 가진 자의 몫인건 아닌지. “도둑질한 적도, 남을 해친 적도 없습니다.

” 수배당해야 할, 감옥에 가야 할 이유도 없다며 자신의 신념을 꺾을 수 없다는 진재영씨. 7년간 마음 편히 쉴 곳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텐데, 매 순간 긴장하고 살아야 했을텐데…. 창살없는 감옥이 그를 더 괴롭혔을게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싸울 것이라며 잘못된 세상을 향해 굽히지 않고 다윗의 돌멩이를 던진다.

“언젠가 수배가 풀리면 우리 같이 밥도 먹고 술 한잔 해요.” 서른이 영영 안올줄 알았는데 벌써 서른 하나라며 진재영씨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누가 그의 청춘을 돌려줄 수 있을까. “자유로워진다해도 왠지 걸어다니는게 어색하고 누가 쳐다만봐도 괜히 놀랄 것 같아요.” 이주영 기자 nanna82@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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