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체장애인올림픽 우승자 박종철씨

잊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잊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쳐 한참 후 "아차"하는 생각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도 빈번하다.

대개 일상생활의 사소한 망각은 아쉬움과 뉘우침으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무신경 혹은 더불어 산다는 사실에 대한 망각. 올해 역시 패럴림픽(국제신체장애인올림픽대회)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으며 이런 악조건에서 역도 박종철 선수(34)의 세계신기록 수립이란 성과는 더욱 빛을 발한다.

화려한 기록들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끝난 시드니 올림픽에 이어 지난 10월18일(수)에 시작된 장애인올림픽이 10월29일(일) 막을 내렸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으례 올림픽이 치뤄진 다음에는 패럴림픽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 뿐. 이런 무관심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종합9위를 우수한 성적으로 거두었다는 것은 선수들의 기량이 나날이 향상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결혼을 앞둔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박선수는 정상에 오른 자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10월27일(금) 열린 역도 82.5kg급에서 박선수가 수립한 242.5kg 성공이라는 기록은 전 체급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성적이다.

그 때의 기분을 "온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사실인가 싶어 다음날 일어나서 얼굴을 꼬집어보기도 했어요"라고 전하는 선수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번 대회에는 워낙 실력있는 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던터라 지난 아틀란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금메달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단다.

98두바이세계장애인역도선수권대회 은메달, 99방콕아시아장애인경기대회 금메달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바로 96아틀란타장앤인올림픽대회, 청중들의 박수소리를 심판의 사인으로 착각해 경기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금메달을 예상했던 탓에 순간의 실수는 박선수에게 큰 실망을 줬고, 부상까지 겹쳐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였다.

"운동을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던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준 사람은 어머니와 윤중희 감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불편해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돐이 지나기도 전에 앓은 소아마비로 양쪽 다리를 쓸 수 없던 선수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이다.

박선수는 중학교를 졸업한 83년 재활원을 다니면서 역도를 시작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본격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오늘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전용시설 없이 뿔뿔이 흩어져 합숙훈련을 해야하고 장애인에 대한 주위의 곱지 못한 시선을 견뎌야하는 현실이 오히려 그를 더욱 단련시키는 요인이 된 것은 아닐까. "장애인올림픽 경기도 일반경기와 다를게 없어요. 경쟁이 치열하고 스포츠맨십도 필요하죠." 이 한마디에는 장애인은 "다른"사람이 아닌 "차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우람한 체구의 박선수가 즐기는 취미는 낚시.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좋고 찌가 움직일 때의 짜릿함이 좋다"고 말하는 그에게는 강한 힘과 인내력이 요구되는 역도선수로서의 자질이 잠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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