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지 아무리 오래되면 뭐해요. 17년째 은행 창구에서만 근무하고 있는 걸요. 저보다 늦게 입사한 남자 직원이 대리로 승진해 뒤에 앉아 있으면 일할 맛 안나죠", "위에서는 자꾸 나가라고 하고... 제가 일을 못하면 당장 우리 식구들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 어쩌죠", "통일연구원에서 왜 여직원들만 정리해고 됐는지 아세요. 대부분 하위직인 여성들은 월급이 적어 퇴직금 정산이 쉬워서래요" - 여성노동영화제 상영장 "평화란 없다"중에서 여성과 노동. 둘 다 해결이 만만치 않은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이 두가지가 함께 얽힌 여성노동문제라면 이를 얘기하는 일 자체가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9월29일(금)-30일(토) 학생문화관에서 여성민우회 노동센터 주최로 열린 "제1회 여성노동영화제(To Resist is to Win)"는 여성노동문제를 영화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행사 준비를 맡았던 여성민우회 노동센터 권현숙 간사를 만나 영화제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영화제를 준비한 계기는 무엇인가 시기적으로 직접적 계기라 할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여성이 전세계 노동량의 2/3를 맡으면서도 임금 수준은 1/8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 말해주듯 여성노동문제는 여성의 빈곤화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여성들의 고용상황이 계속 불안정해지고 있는 우리 나라도 여성은 구조조정의 정리해고 1순위였을 뿐 아니라, 정리해고가 아니더라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5월 현재 여성 임금노동자 532만 중 70%인 375만명이 임시 일용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의 문제를 대중적 매체인 "영상"을 통해 표현한다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품들은 어떤 것인가 전체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는 동시에 변화를 위한 도전을 다루고 있다.

총10개 상영작 중 민우회에서 제작한 "평화란 없다"를 제외한 나머지는 국제 다큐멘터리 판매 사이트(WMM)에서 구입한 외국 작품들이다.

여성노동문제가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만큼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 특히 제3세계 국가나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상영작 중에는 다국적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태국 여성들의 노조조직 투쟁과정을 담은 것에서부터 페미니스트들의 인터뷰를 담은 작품, 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를 기록한 것도 있어 국제 여성운동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고 있다.

여성노동영화제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보다 "노동"의 문제는 바로 우리 일상이기에 영화제에서는 영화적 완성도나 화려함보다는 실제 생활을 다루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상영장 대부분이 영상기록물이나 다큐멘터리라는 점, 영화제를 준비.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일반 후원회원, 직장 여성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영화제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너무 엄살같지만 작품선정 하나에서부터 모든 부분이 어려웠다.

지금껏 여성노동을 다룬 영화제가 없었던 탓에 참고할 만한 자료도 부족했고 외국작품을 번역.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 아마 200여명 후원회원의 재정적 도움이 없었다면 행사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영화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길 원하는가 이제 1회를 치뤘지만 늦게나마 이런 자리가 생긴 것이 다행스럽다.

여성노동영화제는 단순히 상영물 관람에 그치는 것이 아닌, 많은 이들이 직접 참여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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