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을 보던 기자는 광주에서부터 따라온 두통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아직 촛불을 켜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벌써 끄려는 준비를 하고 잇는 건 아닌가?” 그랬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오월 정신을 망각한 우리는 돈 몇푼의 보상금으로 마치 모든것이 다 해결된 듯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민ㅁ중학살의 주범인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정부와 합의하지 않은 채 올해도 신 묘역과 구분된 초라한 구 묘역에서 자식과 형제를 찾을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사람이라면 그래야 했제.”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오월항쟁에 대해 질문을 쏟아내던 기자에게는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80년 당시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던 학생들이 죽검에 찔리고 머리통에서 피가 솟기치더던 상황을 본‘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건 광주라서가 아니고 특별한 사상이 있어서가 아니라‘사람’이라면 그래야 했다고. 망월동을 찾은 17일(수) 오후, 짧은 머리, 어색한 사복을 입은 무리들은 이상한 탐지기를 들고 있었다.

최초로 대통령이 참석할 내일의 5·18 기념식장을 준비한다고 했다.

같은 날 밤 너무나 화려했던 5·18 전야제. 바로 20년 전 , 계엄군이 군화발과 총칼부리를 겨눴을 도청은 총성 효과음과 붉은 조명을 받으며 어린 청년들이 죽어갈쓸 마지막 날을 재현했고, 동원된 헬기와 불꽃놀이는 비극의 그날을 기리는 것이 아닌 하나의 깜짝 이벤트로 치장하며 그렇게 2천년 광주의 5·18을 맞고 있었다.

지금도 신 묘역을 거부하며 넋으로라도 이땅의 민주를 외치고 있는 구 묘역 열사들. 그들을 또 한번 죽이는 부끄러운 5·18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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