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생산공동체의 형태와 의의 점검

40대 중반 김씨는 얼마 전, 15년 넘게 해 오던 ‘막노동’일을 그만뒀다.

대신 동네 주민들과 버려진 전자제품을 수거, 재활용하는 일을 시작했다.

전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김씨와 주민들으 ㄴ일이 즐겁다.

누가 지시를 내리거나 감동하지도 않고 무리하게 일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하고 이익을 나눈다.

× × × 가난하거나 일자리가 없는 이들이 힘을 모아 자활을 위해 뭉친 자화생산공동체. 구성원 스스로의 필요와 자율을 바탕으로 한 탓에 모두가 주인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결정 짓는 폐해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빈민들이나 의식있는 지식인, 종교인들 사이에 이런 공동체가 존재했지만 최근 더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대 강수돌 교수(국제정보경여학 전공)는“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본적인 두 가지 방식, 즉 시장에 노동력을 제공해 임금을 얻거나 국가가 사회보장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모두가 한계를 나타냈다”며“특히 IMF를 겪으며 시장실패·정부실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자구책 마련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종로구 무악동에 위치한 자활공동체‘힌솥밥’. 98년 4월, 무악동 재개발지역 철거민 20여명이 출자금 20만원씩을 모아 시작한 도시락 제조업체이다.

“IMF 이후 살 일이 더 막막해 졌어요. 실직자도 꽤 있는데다 대개 직장이 불안정해 뭔가 대책이 필요했죠.”한솥밥의 대표격인 신동우씨는 주부들의‘솥뚜껑 운전’경력을 믿고 도시락업을 택했다고 한다.

천만원도 안되는 자본으로 시작해 임금 4∼50만원이 고작이지만 이들에게 ‘한솥밥’은 어느 직장보다 소중하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존 체제와 달리 우리가 회사의 주인 아닙니까”라는 신씨는 실업문제를 기업이나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고‘자발적으로 살 궁리를 찾는다’는 데 공동체 운동의 의의가 있다고 했다.

자활생산공동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한솥밥’의 경우처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생산자협동조합형 공동체’가 20여개쯤 된다.

종교·복자단체등의 주도로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실업대책인 공공근로 사업의 일환으로 자활지원센터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사업 내용도 음식물이나 재활용품 수거·처리, 봉제공장 운영, 유기농산물 생산, 건설인력 제공, 무료간병 사업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무료간병은“복지와 고용의 두 마리 토기를 다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도시연구소 부소장 신명호씨의 의견이다.

실업자들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간병을 돌보는 동시에 일자리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지적한 음식물이나 재활용품 수거·처리사업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활생산공동체 운동은 주목할 만 하다.

이외에도 기존 학교 교육을 대신하는‘대안학교’, 도시의 삶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생활 공동체’등이 또 다른 흐름을 이루고 있다.

공통적으로 이런 모든 움직임들은‘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자발적 창업의 경우, 원래 가난했던 이들이 모인 탓에 대부분은 부족한 자금으로 애를 먹는다.

판로확보가 어려워 시장에서 살아남기도 어렵고 작업공간을 얻기도 힘들다.

강수돌 교수도“구성원들의 낮은 학력과 기술수준으로 사업이 거의 단순노동에 국한돼 있다”는 면에서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지적하고, 경제적 성공을 이뤘더라도 원래의 좋은 취지가 퇴색될 때는 이념적 지속 가능성도 문제가 된다고 언급했다.

또 공동체 활동이 사회와 고립된 형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을 들어“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을 바꿀 수 있도록 기존의 여성·환경운동 등과의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지속 가능성도 강조했다.

일부 공동체의 경우 기존 작업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등 자활생산공동체는 시행착오를 거쳐나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를 너무 미화하거나 완전한 대안으로 여기는 것은 아직 이르다.

대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선방안으로 강교수는“구성원들의 자발성·창의성과 더불어 운동에 참여하는 연대성”을 들었다.

신명호씨도 자활적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흐름이 지속되려면 지방자치단체나 기관들이 무료 임대를 해준다거나 자금을 저리로 융자해 줄 수 있도록 사회적 기금을 조성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우리는‘남보다 더 많이 갖기’를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논리 앞에서‘더불어 잘 사는 삶’의 기회를 박탈당해 왔다.

거대한 신자유주으이의 공세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기본적 생계 유지 조차 힘겨워 하는 지금, 인간적 가치나 실ㅁ의 질은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활생산공동체 운동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성장 만능주의를 뛰어넘는 신선한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혼지만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할 게 아니라 함께 잘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일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