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토요일 아침. 침침한 공장 한켠에서 쉼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 부품을 조립하던 K 씨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원망스럽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 숨 푹 잤으며, 아니 잠시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웠으며..."전날 밤 10시까지 일한 탓에 눈앞이 가물거리는 K 씨는 그래도 오전 근무만 하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다.

* * * OECD 회원국중 최장 시간 노동. 전국민 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국제노동기구 자료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1999년 현재 노동시간 주 50시간으로 독일 (주 37.7시간), 프랑스(주 38.6시간)등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31일(수)로 예정된 총파업의 첫번째 요구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있다.

이들은 4월29일(토) 노동자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함께 주5일 근무, 주 5일 수업 실현을 위한 대국민 홍보 캠페인"에서는 찬반 스티커 붙이기와 장미 꽃 달기 등이 진행돼 참가자들이 높은 호응을 보여줬다.

정부와 기업, 노동계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그 실행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열악해진 우리의 노동환경 속에서 "주 5일 근무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은 법정 노동시간을 기존의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8시간 일한다고 가정해 주 5일 근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로써 토. 일요일 이틀로 휴일이 늘어나고, 실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견해는 노동시간 단축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 획득"의 측면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노동의 폐해는 우리 나라가 산업재해 왕국이라는 점에서 증명된다.

한국의 산업재해에 따른 사망자의 비율은 미국의 67배, 일본의 33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리고 적정 임금이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초과근로를 하고 있고,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으로 연, 월차 마저 자진 반납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노동이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닌 생계 유지를 위해 평생 짊어져야 할 굴레로 작용할 뿐이다.

그러나 주 5일 근무를 통한 여가확대는 무리한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노동의 질과 생산성을 높여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창출의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임금, 기계설비, 작업구조등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효과가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정책2국장 주진우씨는"단시일 내에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잔업이 정상적인 근로 형태가 아니라는 인식이 정착되면서 실제 노동시간이 감소되면 일자리 창출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법정 노동시간을 주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해 100만명 정도의 실업자를 구제하기위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93년 독일 폭스바겐사에서는 노동시간을 20% 단축해 약 3만명의 정리해고를 막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처장 김혜란씨는 최근 언론의 관심이 고조된 점에 대해서 "노동시간 단축이 지나치게 부각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저지라는 근본적인 개혁의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해와 달리 올해는 주 5일 근무와 병행해 주 5일 수업 실시가 요구되고 있다.

전교조는 현 교과과정이 학생들이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하게 구성돼있고 수업일수가 지나치게 많은 점을 지적하며 주 5일 수업 시행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한만중씨는"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녀의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하는 등 수업일수 단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주 5일 수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해ㅔ선는 주 5일 근무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노총과 함께 5월말 파업을 비롯 노동시간 단축과 주 5일 수업을 시행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민주노총의 요구에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노사정위원회 (노사정위)에서 논의하자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가 98년 "2000년부터 주 40시간제도입을 위한 논의를 한다"는 합의 사항 및 노동계의 요구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이에 대한 민주노총의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주진우씨는 "끊임없이 교섭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부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노사정의를 통해 재정을 희석시키려 한다"며 위원회를 통해 합의하는 방법에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비롯한 기업측도 노사정 위원회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직접적인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측은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고려했을 때 시기상조이며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 보다 경제수준이 낮았을 때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해 오히려 생산력 향상 효과를 얻었다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노사정위는 "노동시간 단축 특별위원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주 5일 업 실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노, 사,정 모두 인정하는 입장이나 실시시기, 입금인상률,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총파업을 앞둔 현재 노,사,정의 행보가 주목된다.

심채용 기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