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80년대의 치열했던 대학문화. 반미·반제의 이데올로기 일색에서 점차 다양해지는 오늘날 대학문화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 하다.

대학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수천가지 표정의 벽보들. "xx과 MT가요!"에서 "교육투쟁 승리"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의 고민과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생각을 표출하는 장으로서 그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대자보가 항상 벽에만 붙어있으라는 법은 없다.

최근 벽보는 인터넷에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안언론을 표방하는 잦가지 사이버 언론들이 활약하는 가운데 진보·정론을 기치로 등장한 인터넷 신문 "대자보"(http://www.jabo.co.kr). "딴지일보"류의 패러디 사이트가 유행하던 99년 당시 나우누리, 하이텔 등 통신 공간에서 활동하던 논객들이 "차분하고 진지한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의기를 투합, "대자보"라는 논의의 공간을 만들었다.

99년 1월23일 1호 발간을 시작으로 때마다 주요 사안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심도깊은 논의를 제공하는 "대자보"는 신문이라기 보다 웹진의 성격이 강하다.

지난 겨울 군가산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됐을 때 대자보는 편집국장 변희재국(서울대 미학과·3)과우리 학교 김신현경양(대학원 여성학과 석사 2학기)의 토론을 기획으로 삼았다.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구도에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가산점 문제르 놓고 서로간의 이해의 통로를 마련해 보자는 취지였다.

또한 "안티 조선일보운동"등 우익언론에 대한 비판역시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발행인 이창은씨는 "비판은 사라지고 풍자만 남아있다"며 단순한 시비걸기로 그칠 수 있는 "패러디"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들이 기획을 세울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방법으로 쟁점을 유도하고 토론을 활성화시킬 것인가의 문제, 정치개혁보다 언론개혁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은 기존의 언론매체가 제 역할을 하고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대항매체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대자보"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학생, 직장인 뿐만 아니라 환갑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까지 매우 다양하다.

창간 당시 9명이었던 재작진이 30여명으로 늘어나 사이버기자, 기술담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작에 참여해 격주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인터넷 신문들이 그러하듯 대자보 역시 경제적, 인력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어서 제작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도 이씨는 "사이버매채가 인쇄매체 보다 정보를 공유하고 재활용하는데 더 유리해 영향력이 점차 확대될것"이라며 인터넷 신문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대자보가 보수언론이 외면하고 왜곡시키는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대항언론, 나아가 대안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39호 발행을 마친 4월초 이들은 "기사에 임기응변적인 내용이 많지는 않았는가", "체계성은 있었는가" 등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사이트 개선을 위해 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 독자마당과 게시판만이 운영되고 있으며 6·10항쟁을 기념하는 뜻에서 내달 중순쯤 사이트를 열 예정이다.

"가끔 기자들이 기사를 늦게 보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때 마다 "천하의 명문장은 시간에 쫓겨 나온다"는 중국의 옛말을 떠올리곤 하지요"라는 이창은씨의 말을 뒤로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대자보"를 기대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심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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