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또 한명의 노동자의 죽음이 있었다.

금강공업 노동자였던 고 원태조열사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는 지난 11일 숨을 거둔 고박성호열사에 이은 금강공업 분신 노동자의 두번째 죽음이다.

『너무 억울해 눈물도 안나고 적개심만 생길 뿐입니다.

살아서 열심히 일을해야 할 사람은 죽고 , 죽어야 할 놈들은 뻔뻔히 살아있는 것이 분노스럽습니다.

』 동료의 차가운 시신을 두번이나 부둥켜 안아야했던 금강공업노동자 이무신씨(28세)의 말이다.

금강공업에 노동조합(이하노조)이 결성된 것은 지난 8월 10일이었다.

노조가 만들어진 후 노조측은 회사측에 교섭을 제기했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하나였습니다.

회사측에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노동자들 손으로 만든 노동자의 정당한 조직인 노조를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씨는 교섭시 노조측의 요구사항을 말한다.

그러나 회사측은 3차례의 교섭에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한 자세로 일관한 채 지난 29일 공장내 미혼자기숙사를 봉쇄해 놓고 기자재를 밀반출했다.

당시 한 노동자가 겨우 탈출을 해 노조집행부에 이 사실을 알렸고 노조는 비상연락망을 이용, 전노동자들에게 다시 이 사실을 전했다.

연락을 받은 노동자들은 29일 밤 11시 30분 회사정문에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이에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다음날인 30일 탈법적 휴업공고를 내리고 공권력을 요청했다.

『그때 우린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말그대로 평화적으로 정문앞에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경과 짭새들이 갑자기 몰아닥쳤습니다.

이때 박열사가 일어나 손에 신나통을 들고 공권력투입을 저지하려했습니다』며 이씨는 노동자분신전의 상황을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박열사에게 안산시 방범순찰대장이 다가와 신나를 든 박씨의 손을 흔들어 신나가 여기저기 뿌려졌고 다음 순간 라이터를 든 박열사의 다른 손을 흔들어 불이 박열사의 온 몸에 붙은 것이다.

『정말 전시를 방불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분노스러웠던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수라장이 된 농성장에서 진압을 마친 안산경찰서 정보과장과 공장장이 별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었습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이씨. 현재 금강공업 노동자들은 원열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한강성심병원에서 원열사의 시신을 지키며 「살인경찰큐탄 및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채 일용노동자를 고용해 조업을 계속하고 있다.

『사장 전장열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 분신한 동지들의 조문은 물론 가족들의 최소한 사과요구마저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승리합니다.

아니 승리의 길이 멀어도 우린 죽은 동지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웁니다』며 말을 맺는 이씨의 눈엔 아직도 물기가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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