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올해 산 컴퓨터가 고장나서 컴퓨터에 능숙한 옆집 B에게 부탁해 돈을 들이지 않고 수리할 수 있었다.

얼마후 계절이 바뀌자 난초 분갈이 때문에 고민하는 B를 위해 A는 평소 취미인 분갈이 솜씨를 발휘했다.

컴퓨터 수리와 분갈이 모두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A와 B는 상부상조해 절약도 하고 이웃간 의리도 다질 수 있었다.

서로의 일손과 자원을 나누며 친목을 도모했던 품앗이 전통이 오늘날 지역교환거래시스템인 레츠(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로 그 모습을 다시 선보이고 있다.

레츠는 품앗아나 두레처럼 일정한 지역내 사람들끼리 동의와 신용을 매개로 서비스와 물품을 교환, 매매하는데 실제 화폐가 아닌 가상의 화폐를 사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1983년 캐나다의 한 농촌에서 경제불황,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마이클 린턴이 처음 고안한 이 시스템은 우리나라엔 경제가 어려웠던 97년 IMF 경제위기를 즈음해 도입됐다.

이미 전 세계 1천여 곳에서 10만의 사람들이 레츠시스템을 통해 금전적으로 어려운 개인 구호와 지역발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미내사:747-2261)모임을 중심으로 대구, 인천 등 전국 30여 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지역통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이웃간에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해 궁극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확장된 지역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이다.

미내사 윤홍순 홍보실장은 "레츠시스템에 동의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고 말한다.

돈을 발행한다는 것은 돈을 찍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레츠회원들 간의 화폐교류를 말한다.

모든 레츠회원은 0으로 시작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 계정을 가지게 돼 만일 내가 철이에게 시간당 2만원의 영어교습을 받았다면 대가 2만원을 현금 대신 지역화폐로 지불한다.

내 계정에는 "-2만원" . 철이 계정에는 "+2만원"이 표시되는 것이다.

만일 내 계정의 잔고가 0원이었다고 해도 레츠 안에서는 -2만원이란 개념이 가능하며, 이는 결코 빚의 개념이 아니다.

개인의 신뢰에 따라 거래를 이루기 때문에 이너스 계정을 가진 사람도 신용이 있다면 거래는 계속 이뤄지기 때문이다 레츠화폐는 쓸수록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해내며 누구나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

이는 개인이 맘껏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쓰이는 "상대적 박탈감", "부익부 빈익빈"이란 단어는 레츠화폐의 풍족함 속에서는 곧 없어질 말인 셈이다.

또한 자신의 여유능력을 서비스로 제공하는 만큼 사람들은 자신이 즐길 수 있으면서 특기로 살릴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려 하고 결국 개인의 삶이 보다 여유로워질 것이란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내사에서 처음 도입한 지역통화시스템인 fm(future money)시스템에서 화폐 단위는 fm이며 won(원)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

실례로 fm회원인 종로구 가회동의 한 미용실은 fm회원에 한해 컷트비용 8천원 중 4천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4천fm으로 미용실 계좌에 저축해 다음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역화폐는 정해진 영역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규정하지만 동등한 조건 하에서는 교역이 가능하다.

지난9월12일에 있었던 제1회 전국 지역통화워크샵에 참석한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스빌의 지역공동체 활동가 샨티바니씨는 지여고하폐인 게인스빌 아워(hour)로 항공권을 구입해 한국에 왔고, 돌아갈 때는 게인스빌 아워를 fm으로 환전해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이 밖에도 서초구청(레츠저축시스템), 동작문화복지세터(자원봉사은행), 송파구청(품앗이)등의 기관을 비롯 중앙대부설사회복지관(기술도구은행)등의 단체들이 나눔(1나눔=1원), cm(community money), gm(green money)민들레(1민들레=1만원) 등 다양한 이름의 지역화폐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민들레교육통화시스템은 교육에 관련된 서비스나 물품에 한해 거래를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노인문제와 관련 더불어 살아가는 노후를 위한 시간달러도 각광받고 있다.

시간달러는 젊어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중에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됐을 때 저축해 둔 시간달러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로 동료애, 사랑, 보살핌과 같은 특별한 가치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레츠시스템이 대중화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회원들 조차도 이 시스템을 낯설고 어색해 한다.

한달여 만에 70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전주 근로자선교상담소 이승희 간사는 "모두들 신기해하고 재밌어한다.

"며 "거래내역을 보면 노동력은 비싼가격에 팔리고 물건값은 싸게 내놓고 있어 이는 실질임금의 향상을 말해준다.

"고 전한다.

서초구청 기획예산과 백정환씨는 "아직 지역시스템 정서에 익숙치 못한 시민들은 지역화폐를 지불함에도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미안한 맘을 가져 자신의 서비스를 내놓기만 할 뿐 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 말한다.

누구나 한번쯤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주인공처럼 돈벼락이라도 맞는 꿈을 꿔 본다.

현 경제체제 하에서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고안된 돈이 인간의 자유, 책임, 신뢰의 틈을 벌려놓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돈이라 불리는 지역화폐. 여기엔 빵 한 족각이 없어 굴굶어죽는 소말리아 사람들을 외면한 채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쫓아 먹을 수 있는 음식도 폐기해 버리는 지금의 경제구조를 바꿀 만한 힘이 있다.

그들의 희망대로 자본주의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지역화폐가 인간 중심의 공동체를 환원시키고 결국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우리의 모습을 만드는 신경제화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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