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기지촌 매춘여성의 억울한 죽음만도 끔찍한데 정숙언니 같은 분이 죽다니…앞으로 얼마나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거죠?” 7일(화) 미군의 타살로 추정되는 ‘새움터’식구 이정숙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탈매춘을 위한 몸부림이 어떠한 고통을 수반하는지를 곁에서 지켜본 김현선씨 (새움터 대표)에게 1년 2개월 전 매출 생활을 청산하고, 직업재활센터에서 새 삶을 이뤄가던 이정숙씨의 죽음이 가져온 절망의 무게는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발적으로 매춘여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결국은 가난이 문제죠.”라고 말하는 그녀는 매춘을 강간이라고 규정한다.

자발적이라면 자기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그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떠드는 사람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무심코 꺼낸 영화 ‘창’얘기에 “새움터에서도 용기있는 몇 분들만 보는 걸요. 언니들을 상품화하는 그런 매체들은 맘이 아파서 못보겠더라구요.”라며 앞으로는 열심히 볼 것이라고, 그래서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녀가 말하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하루하루 지탱하기가 버겁다.

폭력과 빚에 쫓기는 생활속에서 가장 원하는 건 이 기지촌을 떠나는 일이다.

그러나 반겨줄 부모도친구도 없는 어린 소녀가 월수입00만원의 뜻도 모른 채 ‘숙식제공’이라는 말 한마디에 유흥업소를 제 발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서로가 빚 보증을 서야 하고 감시해야 하는 기지촌에서 누구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친구가 되는 일은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일이라는데. 기지촌 여성들을 큰 언니, 작은 이모라고 부르는 그녀는 서로간, 언니들과 새움터 식구들간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서로의 파트너가 돼 “나는 못하지만 너는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께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 한마디의 위력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90년 대학 4학년 시절 전화 한통으로 무작정 동두천을 찾았던 일이 최초의 기활이더라는 기지촌 10년지기 김현선씨. ‘기지촌 여성’보다는 ‘양공주’로 인식됐던 시절, 어린 딸에게 차라리 농활을 가라셨다던 부모님께는 자신이 불효녀라며 목이 메인다.

하지만 기지촌에 딸을 둔 많은 어머니들에게 그녀는 얼굴 모르는 효녀가 아닐까. 기지촌 여성, 혼혈 아이들의 문제를 함게 풀어가는 단체인 ‘새움터’는 동료의 딸 이름인 ‘새움(새싹이 움튼다)’에서 따온 것으로 새움이같은 아이들이 자라서도 고통 받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처음 얘기를 나눈 기지촌 여성이 자신과 동갑이었단 말에 각각 여대생, 매춘여성으로 마주 섰을 때의 그들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너와 내가 다른건 누가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라고 생각해. 정말 우연히 내가 너보다 좋은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거야. 이제는 내가 누렸던 부분을 나눠주고 싶어.”첫 마음 그대로 두레방에 이어 96년 새움터를 연 그녀는 이정숙씨 사건과 같은 일이 생길 때마다 뿌리까지 흔들리는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면 시작도 안했을 거라는 기지촌의 작은 거인 김현선씨의 결의에 찬 말이 메아리 되어 장성한 새움이들에게 전해질 날을 손꼽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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