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인 이념을 효과적으로 독해하려면 제대로 된 비평과 논의가 필요하죠." 그래서 그들은 뭉쳤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그들이 진보적 이념을 찾으려는 장르는 소설도, 시도, 영화도, 연극도 아닌, 바로 만화이다.

뭐, 만화를 진보적으로 읽겠다고? "진보적 만화읽기, AGAINST THE TOON(아가툰)". 그들은 기존의 만화읽는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한다.

왜? "최근 만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매체로서라기보다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주목됐죠."라며 문제점능 지적하는 시삽 김낙호씨. 만화를 "매체"라는 본 위치로 격상시키는 것 자체가 진보적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어쩌면 너무 타당하다.

"매체에서의 진보란 수동적 수용을 넘어서, 그 안의 정치성과 효과들을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진보성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만화는 매체"란 전제가 있어야 하므로. 그 전제가 받아들여졌다면 실제로 그들의 진보적 만화읽기를 뒤쫓아 가보자. 그들은 굳이 어려운 공식을 대입하거나 현란한 미학적 가치를 찾아내려 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작품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내려는 것이다.

만화 안에서 우리의 현실을 읽어내기 위해. "마스터 키튼은 더이상 만화 안의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슈퍼맨이 되고 싶은 무능한 샐러리맨이예요. 한국남성들이 거울이 되는거죠." 풀 하우스의 엘리는 또 어떤가.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으려는 본래의 효심(?)은 밀려난 채,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하는 라이더와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것이란 한 회원의 해석. 우리 사회 여성들의 모습이랄 수 있지 않을까? 왜, 누가, 어떻게 만화를 만들고 읽는지를 생각해보자. 그럼 만화 안에서 우리 사회를 읽어내는 것이 결코 억지가 아니라 만화 자체가 곧 사회의 일부란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화에서 찾아내는 현실의 문제들은 현재 우리가 실제로 안고있는 문제들이며 바로 그것들을 꼬집어 냄으로써 그들은 발전과 진보를 꾀하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화를 매체로서 인정하는 첫 단계를 지나 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이끌어 내는 중간 단계를 넘어서면 마지막 과제에 부닥치게 된다.

바로 적극적인 현실 인식과 개입의 길을 찾는것. 이와 같은 능동적 참여가 "진보적 만화읽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약간 만화를 더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모임. "정말 만화를 사랑하고 만화가 대접받는 자리를 보고싶은 사람은 초빙해서라도 모셔올겁니다.

"라는 부시삽 김낙훈씨의 말처럼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 만화를 통해서도 진보를 논할수있는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아가툰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본다.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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