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29일 개강을 몇일 앞두고 모처럼 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TV에서 남북노동자축구단의 평양방북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것을 보며 얼마전 참가했던 범민족대화가 생각났다.

8월 어느날 한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범대회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게 됐다.

그 대 통일, 민족, 역사와 같은 평소 친구들과 잘 쓰지 않던 단어들을 접했고 과거에 열렸던 범대회가 어떻했는가에 대해서도 알게됐다.

그 때 선배, 친구들과 나눴던 얘기들에 모두 확신은 가졌었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고, 그랬기에 나 스스로가 범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것은 아닐까? 행사가 열린다는 서울대 앞은 정경들이 버티고 서서 서울대생만 출입시켰다.

대회장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찾은 우리는 산을 탈 수 밖에 없었다.

신발가지 적셔가며 개울을 건너 범대회가 열린 서울대 본관 앞 잔듸밭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미 밤은 깊었다.

도태체 몇명인지 가늠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모여드는 사람들, 8월의 폭염 속에서 2박3일간 쉼없이 목청것 노래를 부르고, 밤을 꼬박 새워 통일 기원 문화공연을 하고도 아침이면 서로 어깨 걸고 뛰어다니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나 또한 그들과 어울려 밤을 지새웠지만 머릿속에는 ‘대단하다’는 감찬사와 함께‘무엇을 위해?’라는 의문이 줄곧 떠나지를 않았다.

암만해도 머리가 복잡했다.

왜 저 분별있는 사람들이 집에서 편히 수박이나 먹으며 8·15행사 중계나 보고, 북녘 동포 돕기 성금이나 내면 될텐데 3일 밤낮을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통일을 부르짓어야 하는지 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아런 의문을 갖던 내게 거기서 만난 할아버지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통일을 어렵게 생각하지마, 나는 북한에 두고 온 친구들이 있어, 그 친구들의 마음, 생각, 처지를 이해할려고 노력하는 거지. 왜냐고 물으면 딱부러지게 말해 줄 순 없지만, 그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끼고 보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내 힘껏 도와주고싶은 마음, 통일이란 바로그런 마음에서 시작되는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거냐” 놀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채 편견에 매여 있었던 것 같다.

지금가지 통일은 ‘당연한 문제’가 아닌 ‘부수적 문제’로 말려나고 있었다.

특히 전쟁을 겪지 못한 나와같은 세대에게 통일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지 못했다.

우리 부모님들은 “통일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 우리보다 가난한 북한 사람들 때문에 지금보다 더 어려워 진다.

”고 말씀하신다.

독일의 통일을 생각하면 부모님들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럴까? 집에서 통일관련 책을 뒤졌더니 분단 비용이 통일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는 보도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통일 당시에는 혼란도 일고 많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좀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든다.

남북이 서로 부적한 자원·가술을 채워가고, 북쪽을 통한 무역로를 개발하고 지금의 군사비를 현격히 줄인다면 오히려 경제적 부흥을 가져올 수도 있을텐데, 편견에 쌓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통일은 경제원리로 설명할 수 없는 당연히 이뤄야하는 하나의 과제란 생각이 든다.

숙제를 미루면 선생님께 혼이 나듯, 민족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 모일 수 있는데 이데 대한 노력조차 않는다면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을까? 단일민족 국가로서 우리가 걸어온 5천년 길을 겨우 50년 분단 세월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불안을 감출 수 없는 이유는 점점 벌어지는 남북간의 언어, 생활 등의 틈새와 통일을 두고 찬반을 가르는 웃지 못할 현실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한겨레인 우리 민족이 갈라져 있는 현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거다.

우리에게 통일은 선택 교양과목이 아닌 전공 필수 과목과 같다는 생각을 이제부터라도 해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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