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모두 끝난 후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학교 앞 상가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가는데 친구는 가까운 길을 놔두고 굳이 더 먼 길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아침에 언니와 신발가게에 들렀는데 구경만 하고 사지 않아 가게점원과 좋지 않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점원은 친구와 언니에게 첫손님부터 기분 나쁘게 구경만하고 간다며 불친절하게 대했고 이후 다시 그 가게에 들렀을 때도 여전히 불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아침보다 더 비싼 가격을 요구했단다.

그래서 신발은 사지도 못한 채 불괘한 기분으로 가게를 나선 친구는 그 점원을 다시 마주치는게 내키지 않아 다른 길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친구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그와 비스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났다.

작년 여름 학교 앞에서 산 샌들이 맘에 들지 않아 다음날 교환을 하러갔다.

그런데 샌들을 하나 더 사지 않으면 교환해 줄 수 없다길래 가게 점원과 한참 말다툼을 하다 결국 기분만 상한 채 가게를 나왔었다.

나역시 지금도 그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점원과 다시 마주칠가봐 의식적으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지나다닌다.

흔히들 ‘손님은 왕’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종종 손님이 아닌 ‘주인이 왕’인 가게들을 보게 된다.

당연히 우리는 소비자로서 물건을 구경할 권리가 있고, 또 맘에 들지 않으면 사지않을 권리도 있으며 구입 후에도 물건에 손상이 없는한 일정 기간 내에 교환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을 잘 알면서도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조금은 주눅들고 미안한 기분으로 가게 점원들을 대한다.

또 가게측의 부당한 대우와 행동에 끝까지 논리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그저 운이 없다는 생각으로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우리는 민주사회의 기본요건으로 국민의 인권보호를 꼽는다.

혹자는 인권보호를 정치적이나 사회적인 탄압에 대한 대항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구호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인권의 본질적 의미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들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가 권리 역시 넓은 범위의 인권에 속함에도 불구,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권리는 남이 찾아주는 것이 아니다.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각과 함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때 작게는 소비자 권리에서 크게는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호받고 지켜질 수 있다.

비록 작은 권리일지라도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 정당한 권리가 침해받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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