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 찾는 광주, 그리고 금남로. 기자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장면을 연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높아진 금난로 주변 빌딩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80년 5월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5·18 광주항쟁 행사를 알리는 플랜카드 정도가 지난 19년간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 5월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려줄 뿐이다.

예년과 달리 고요한 광주에 대해 택시운전을 하는 김성은씨는“지난 19년간 광주에 자행된 고립화와 탄압은 광주시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제 광주 시민들은 화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를 찾길 원한다”고 말한다.

아마 이 말이 현재 광주의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99년 광주, 그러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조용한 광주시내를 지나 전남대에 도착, 여기저기 붙어있는 자보와 학생들의 노래 소리 속에서야 비로서‘5월의 광주’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전남대 학생회관에서는 5·18 관련 다큐멘터리르 상영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다큐멘터리 상영은 5월이면 서울을 비롯 어느 대학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전남대에서 본 5·18 다큐멘터리는 마치 군인이 확인사살 하듯 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잔인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전에는 후배들과 함께 비디오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고 같이 슬퍼했는데 지금은 후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 지 모르겠어요. 분노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죠”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던 전남대 94학번 이승철군의 말이다.

이군의 말처럼 이제 5월 광주는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런 광주의 고민은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작년부터 시작됐다.

5월 광주의 희생자 중 한 명인 그가 대통령이 되자 광주는 고민스러웠지만 전·노사면을 조용히 동의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광주는 확실히 술렁이고 있다.

늦어지는 진상규명·명예회복·피해보상 등이 그 원인이다.

5·18 부상동지회 소속 김태권씨는 김대중 정부 2년에 대해“김대중 대통령은 지역 감정을 고려해 1년만 참아달라고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에도 문제해결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며“이제 광주는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권력기반이 약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참아야’한다는 것이다.

이 두 의견이 간격이 좁혀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 정부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청 앞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양희씨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묻자 한 숨 먼저 쉰다.

“1년 참으라 해서 참았지만 2년이 되도록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화도 나지만 지난 수십년간 믿어온 사람인데 조금만 더 믿어볼라요”라고 말한다.

이제 광주는 ‘믿음’에 대한 마감시간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다.

‘화합’에도 선행돼야 할 것은 있다 광주 모 일간지 기자는 올해 5·18 행사의 초점은‘영·호남 화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역감정 해소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행사를 보면 알맹이는 빠진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왜냐하면 정작 용서를 빌고 화해의 악수를 청해야 할 사람은 그럴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기에. 지난 14일(금) 열린 조선대 학생들과 영남대 학생들의‘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마라톤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마라톤 대회에서 만난 영남대 이도원군은“지역감정 해결은 당연한 것이지만 무너가 부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마라톤 행사에 참여한 조선대 학생들은 체육학과 학생들로 동원(?)된 것 같다며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이와 관련 5·18 기념재단 기획부장 허연식씨는“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되는 인위적 이벤트성 행사는 지역감정 해소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진정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는 전·노 일당의 진정한 반성과 정치구조 변화를 통해 국민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99년 5월의 망월동은 차분했다.

한때는 참배오려는 사람들과 경찰들간의 마찰로 최루탄 냄새가 자욱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명예회복·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깔끔하고 화려하게 공원처럼 꾸며진 묘역과 거대한 5·18 기념탑은 기자의 마음을 착찹하게 만들었다.

망월동, 결코 잊어서는 안될 아픔 그리고 또 하나 변화는 망월동 신묘역이 유치원 꼬마들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인솔에 맞춰 망월동을 둘러보는 이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5월의 광주는 세상 속에서 한발한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기자가 5·18 당시 고등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다고 말하자“저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꼭 참여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한복고등학교 2학년 김태훈군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신묘역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구묘역이 나온다.

구묘역은 명예회복과 책임자처벌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신묘역으로 이장할 수 없다며 남아있기를 고집하는 5·18 희생자와 함께 민주열사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런 사연이 있어서일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가시적인 기념물 보다는 5·18 광주항쟁을 올바르게 되살리는 것이기에. 1박2일간 본 광주는 19년간 억압과 피해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과도기’적 모습이었다.

광주의 이런 과도기적 모습에 기자는 묻고 싶었다.

광주의 기나긴 투쟁은 ‘호남대통령을 위한 투쟁’이었냐고, 아니면 망월동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의 말처럼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투쟁이었냐고. 하지만 지난 19년간의 거친 세월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광주는 좀처럼 기자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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