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임금을 들고 잠적해버린 사장의 집을 겨우 찾아 그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지 며칠, 목빼고 나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몫의 임금을 받아가리라. 하지만… × × × 4월27일(화)‘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대통령의 공포만 남겨두고 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개정안이 제시된지 단 몇시간만의 일이다.

이에 인권·사회단체들이 개정안 통과과정과 기본권 침해여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선 개정안 제8조‘타인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인 경우 그 거주지 또는 관리자가 재산, 시설이나 사생활의 평온에 심각한 피해가 발행 할 수 있음을 이유로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는 때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경찰청측 한 관계자는 “집회·사위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면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을 권리도 보장받아야 하지 않느냐”며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김도형씨는“집회에 의한 사생활 침해나 폭력시위 등의 문제는 현재의 민법으로도 충분히 해결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집시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보호를 명목으로 ㅁ니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 즉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것은 집회 자체를 사전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또한 경찰이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먼저 시민들에게 시설보호요청을 권고할 가능성도 있어 그 남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법의 적용에 있어 객관적 잣대가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제8조의 ‘타인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및 제12조‘관할경찰서 장이 집회·시위의 보호와 공공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규정은 경찰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명확치 않은 기준과 함께 관할경찰관서 장에게 사법처리·집회 해상에 대한 권한까지 부여한다는 것 역시 집회의 자유에 제약조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개정안 자체가 인권침해의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에도 불구, 사전에 인권·시민단체들과의 공청회 등을 통한 논의과정이나 홍보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 제2장 제21조 1항에서‘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호,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한 것처럼 이번 개정안은 국민기본권 관련 주요법률인 만큼 충분한 논의와 여론수렴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 과정들이 모두 생략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박래군씨는“우리도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에야 신문을 통해 그 내용을 알게 됐다”며“이는 이번 개정안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증면한다”고 말했다.

이토록 규제를 강화한 집시법 개정안을 재빠르게 통과시킨 이유는 노동자와 정부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여전히 온나라를 휩쓸고 있는 지금, 노동꼐는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이에 정부는 노동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집시법 개정을 통한 집회·시위의 제약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집회와 시위는 의사 표현의 한 수단이다.

선진국에서 피켓팅, 거리시위가 자연스러운 의사표현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 등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집회·시위가 가능하도록 의식과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개정안은 민주주의의 퇴보로 평가된다.

이젠 더이상‘집회로 인해 피해받는 선량한 시민을 위해’라는 이유로 시민과 노동자를 분리시키며 은근 슬쩍 이런저런 규제조치를 끼워넣어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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