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수배자와 양심수에게 자유의 봄을 위한 99 인권문화제’

20일(토) 오후7시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 학생들이 속속들이 조계사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뒤를 좇아 들어선 대웅전 앞마당에는 이미 천여명의 학생들이 차디찬 바닥에 가지런히 열을 지어 앉아 있었고 사방은 무대로부터 들려오는 노래소리로 가득했다.

활기찬 노래를 시작으로 곧이어 ‘정치수배자와 양심수에게 자유의 봄을 위한 99 인권문화제’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여느 때와 바찬가지로 이날 인권문화제의 단골손님은 역시 양심수였다.

그것은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한민국에서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신체의 자유를 억압받는 인권침해의 대쵸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범죄자’라 부르지 않고 ‘양심수’라고 따로 호명하며 석방을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날 인권문화제에서는 내면세계에 문제가 있다며 그들을 0.75평 독방에 몇 십년 동안 감금시킨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주요 회두로 떠울랐다.

“국가보안봅 위반으로 사형선고 까지 받았던 대통령 이기에 뭔가 다를줄 알았는데…”라며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저마다 분노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아무런 벼놔 없이 인권문화제는 올해도 열리고 있다.

아니, 준법서약서라는 사상을 강조하는 또다른 제도가 등장했다는 점이 변화라면 변활까? 20여일 전부터 양심수 최진선씨는 이러한 준법서약서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며 목포교도소에서 목숨을 건 60일째 단식 투쟁을 진행 중이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누님이 힘있는 목소리로 낭독하자 공연의 흥겨웠던 분위기가굽새 고요해 졌다.

“전두환, 노태우가 무조건적으로 사면된 것은 준법서약서가 형평성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구나 신체의 자유를 미끼로 인간 내면의 사상까지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준법서약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편지에는 불의에 구라지 않는 그의 강한 신념이 진하게 배오 나왔다.

이처런 끊임없이 반대의 목소리가 터나오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준법서약서, 국제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언급한 이후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와 어귀까지는 여저니 최진선시와 같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뒤이어 비전행 장기수들이 무대에 오르자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것 없이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햇다.

어느덧 하얗게 세버린 그들의 머리킬과 굵게 패인 주름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수감돼 청춘을 버려야 했던 30여년 간의 인고를 짐작케 했다.

그러나 그 긴 시간도 국가보안법의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의 신념을 약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 했다.

이러한 양심수·장기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음지가 또하나 있다.

범죄자로 낙인 찍혀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정치수배자가 바로 그들, 수배자를 아들로 둔 어머니는 무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다 결국 오열했다.

그러나 오직 아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끝내 자수하라고 말하지 않는 작고 초라한 어머니의 모습에 학생들은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하위법인 국가보안법은 사상·집회·결사를 문제 삼아 양심수와 수배자를 만들어 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인권 대통령’(?)에게서도 이에 대한 개혁의 기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에 그들은 또다시 이렇게 인권문화제를 열어 준법서약서와 정치수배의 부당함을 알린다.

이날의 행산느 야릿한 향내가 가득한 경내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촛불들의 행진으로 정리됐다.

조계사 대웅전이 촛불로 둘러쌓이고 학생들은 흥겨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인권문화제를 위해 모이는 학생들의 바램과 의지가 조계사에 가득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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