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여성을 독려할 수 있는 최최의 상-우월 김활란상. 아마 김활란 박사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상 자체의 의의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김활란상 제정 여부가 논란이 되는 이유도 이 상을, 일제 시대 권력에 굴복했다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으로 제정해선 안된다는 반대의 목소리 때문이다.

비단 우월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친일"은 청산되지 못한 채 현재의 뿌리가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성전문·동아일보·경성방직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거론되는 인촌 김성수는 사회와 교육에 큰 공헌을 한것으로 알려져있으나 형제들과 함께 친일분자로도 유명하다.

비슷한 예로 연세대 초대 총장을 지낸 백각준은 1943년 대동아전쟁을 "숭고한 역사적사명"이라고 주장했으나 1957년 "제국주의적 야심에 사로잡힌 일본이 벌인 부정불의"라고 규탄하는 등 해방 후 입장의 급전환을 취하는 뛰어난 처세술의 소유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 교육계와 관련해 박인덕(인덕전문대), 배상명(상명대), 고황경(서울여대) 등 대부분의 인사들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된다.

이렇듯 뿌리깊은 친일의 역사 앞에서 제정 찬성측은 분명 친일정책을 인정하지만 과보다 공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홍난파나 김팔봉·김동인 등도 친일파지만 각 분야의 업적을 기려 이미 상이 제정돼 있는 인물들이라며 여성·교육계 부문에서 우월의 큰 공로는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친일을 통해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당시 상황이 어쩔수 없었고 다른 사람도 대부분 그랬다는 이유로 정당한 영웅이 된다면, 당시대인 뿐만 아니라 후손들까지도 적당히 시대에 영합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삶의 지혜로 여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96년에 문명정부가 이효재 공동대표(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여성발전 유공자로 선정, 국민훈장 석류상을 수여코자했을때 "5공세력의 대표적 여성인물"과 함께 받을 수 없다며 훈장을 거부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의 결단은 "역사 바로 세우기"와 모순되는 정부의 혼란스러운 가치관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김활란상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상이 여성이 여성을 독려하는 최초의 상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이 기리고 있는 인물이 대한민국 역사상 크게 기억될 오점을 남겼다는 사실은 본래의 으도를 희석해버리고 만다.

오히려 아직 청산되지 않은 친일역사 속에서 역사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만을 야기할 뿐이다.

여성 지위를 향상시키고 활동 동기를 부여해 줄 상이 그 이름으로 인해 시대의 가치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망설일 수 밖에 없다.

김활란 박사의 업적은 이미 이 시대의 여성들의 모습 속에 살아있으나 아직도 친일역사가 청사뇌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 볼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좀더 자명해 지지 않을까? 나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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