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화) 남파무장간첩 김동식씨가 부여에서 생포되고 3일(금) 권영해 안기부장이 “간첩사건과 관련 국내 재야운동권 인사들에 대해 수사할 것”이라고 국회에서 발표한 이후, 재야·노동계 인사들이 속속 구속되면서 또다시 레드컴플렉스가 기승을 부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5일 (일) 불고지죄로 구속된 함운경씨(민족회의 전 조직부장)를 시작으로 6일(월)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우상호씨·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정치 부국장 이인영씨가 각각 구속되고 8일(수) 새 정치 국민회의 당무위원 허인회씨가 모두 불고지죄와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이들은 “간첩 김동식씨가 사업관계상 또는 통일운동에 관심이 있다며 접근, 5분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만났으나 통일원 고위관리나 알고있을 법한 대북접촉에 대해 자꾸 묻는 등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정부의 기관원이나 정신이상자로 생각했다”며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특히, 15일(수) 전국연합사무차장 박충렬씨와 성남미래준비위원회대표 김태년씨가 간첩활동혐의로 각각 구속, 안기부는 이들이 89년 김동식에게 포섭된 뒤 그동안 남한의 정보를 북측에 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연합은 이에 대해 “안기부가 제시하는 구속영장의 내용이 네차례난 변경되고, 수사중 안기부가 구속자에게 물적증거나 논리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무조건 바른대고 대라식의 강압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심지어 안기부는 박씨가 북쪽에 넘겼다는 통신내용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경찰이 구속영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등 부당한 구속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안기부는 수사과정상 구속자들을 며칠째 잠을 재우지 않고, 손들고 벌서게 하는 등의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의 이러한 행위는 5천억원 부정축재로 구속상태인 노태우씨에 대한 특별대우와는 매우 대조적이어서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편, 정부의 공앙바람은 노동운동계까지 영향을 미쳐 지난 1일(수)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노운협)소속 문성현씨를 비롯, 김영호·박용식씨가 각각 구속됐다.

문성현씨 등의 당시 구속사유는 북한에서 통신을 보내왔다는 것이었으나, 이후 전노운협 규약상의 ‘자주민주통일 노동해방’이란 단어를 근거로 안기부는 전노운협을 이적단체로 규정, 급작스럽게 구속사유가 변경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전노운협 자체를 이적으로 규정하면서 안기부는 혐의 범위를 확대, 전노운협 박승호씨 등 5명에 대해 추가수배조치를 내리고, 뿐만아니라 12일(일) 출범한 민주노총이 전노운협의 조정을 받고있다며 민주노총까지 이적으로 몰고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수사방향이 갑작스레 변경되는 등 안기부의 구속·수사에 대해 “단지 구속을 위한 빌미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노운협사무국장 이용희씨는 “구속사유까지 바꿔가며 전국연합을 이적으로 몰고 이를 민주노총에까지 파급시키는 것은 12일(일) 출범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단결할 노동자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련의 구속사태에 대해 전국연합인권위원회 간사 고상만씨는 “92년대선시 발생한 중부지역당 사건 등 선례를 바라보면서, 지금 역시 5.18 불기소처분과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집권여당이 정국돌파용으로 국민의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하며, 올해 역시 96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을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이끌어 가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연이어 계속되는 구속사건에 대해 노동운동진영은 이번 사건이 5.18·노씨비자금 사건 등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아래 구속자들은 21일(화)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노동운동계는 5.18불기소철회와 노태우 특별대우 철회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5일(일)부터 무기한 항의농성에 들어가는 등 활동이 활발하다.

92년 대선시 불거져나온 중부지역당 사건. 94년 성수대교 붕괴시 터져나온 부부간첩단 사건. 이처럼 중요한 선거 시기·민심이반등 정국이 불안할 때 간첩사건은 항상 있어왔지만 ‘간첩’이 주는 국가안보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 마무리는 흐지부지되고 말아, 사건처리여부 등 그 결과를 알 수 없어 간첩사건이 조작이 아니냐는 주장에 설득력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총선을 몇 개월 앞둔 올해 또한 이런한 사건이 예년과는 다르게 노동운동계까지 이적으로 규정하고, 또다시 국민의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하는 공안정국 조성이란 무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정부를 보며 여전히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을 기만하려는 정부의 얄팍한 계산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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