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있는 사상만큼 차별적 공약 필요

각 대학마다 선거가 한창이다.

본교를 비롯한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 등 각 학교별로 선거가 진행중에 있고 연세대는 15(수)·16일(목) 양일간 투표를 진행, ‘자주시대·통일연세’를 주창한 박병언(기계공학·4)·이도윤(철학·4)군이 각각 총학생회장·부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

서울지역 대부분의 대학에서 각각 3·4파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이번 총학생회 선거는 예년과 달리 몇가지 특색을 보이고 있다.

90년대 들어 동구권의 몰락이후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이란 명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학생회 선거 또한 서로의 사상적 지향성을 명백히 드러내지 않는 ‘색깔없는 선거’양상을 보였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 총학생회 선거는 서로의 사상을 학생들에게 평가받는 사상전의 보습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선거에서 ‘공산주의’를 지향점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사상적 색채를 분명히 밝힌 연세대의 김성훈후보(현 연세대 총학생회장)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 학생운동진영과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듯 올해 선거에서 나타난 ‘좌파, 주류질서의 전복자’, ‘탈주, 새로운 질서를 향하여’(이상 좌파진영), ‘자주·민주·통일’, ‘사람사랑 학생회’(이상 NL진영) 등의 구호는 ‘21세기…’, ‘진보…’등의 모호한 구호를 내걸었던 예년의 선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5.18과 노태우 비자금사건 등으로 현 정치권의 보수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이러한 사상성이 일반 대중·학생에게 거부감으로 다가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제 보수정권에 공세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생운동 진영의 자신감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이와함께 이번 선거에서 주목받고 있는 부분은 지난 8.15민족공동행사에서 분열을 보였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주류인 민족민주(NL)진영이 이번 선거에서도 ‘사람사랑 학생회’와‘자주적 학생회’로 별도의 후보를 냄으로써 분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NL진영이 내세운 ‘민족논리’가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을 설명하는데 한계에 이른 결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에 대한 대응방침이 뚜렷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일고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92년, 각 대학의 선거가 대선 대응방안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이며, ‘백기완 민중후보 추대’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각 후보들의 입장표명이 후보선택의 판단근거가 되었던 이전과는 달리 총선을 몇개월 앞둔 상황에서 지금의 후보들은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 있어서 여·야 등 보수정치세력 뿐 아니라 재야운동진영 또한 총선을 앞두고 분열·조직화를 거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을 세우는 등 이번 선거는 한국사회의 정치질서 재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인데, 이에 대해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총선대응방침의 부재와 함께 기존 학생회 질서에 대파란을 예고하며 각 학교마다 96년부터 실시될 학부제에 대해서도 각 선거운동본부는 이렇다 할 대응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각 선거운동본부마다 제2대학· 과학생회를 대신할 학회활동강화 등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같은 대안은 예전부터 몇몇 학교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방안을 뛰어넘지 못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각 후보별로 차별성이 없는 이런 대안들은 부진한 정책연구와 함께 급박한 선거준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연세대와 경희대에서 후보들의 TV토론희를 진행하는 등의 학생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다각적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각 대학의 선거분위기는 고조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자유로운 인간공동체 전국 학생연대’사무처장 정성훈군(서울대 철학·4)은 “쟁점의 부재와 함께 1학년 새내기에게 최대 교양의 장이 될 수 있는 학생회 선거가 11월에 치뤄지는 시기적인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89년까지 3월 선거로 치뤄졌던 학생회 선거는 4·5월의 계속되는 투쟁으로 선거를 제대로 치뤄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으로 11월 선거로 대체되었으나, 11월 선거는 3월 선거에 비해 이미 대학사회의 자본주의적·자족적 일상에 젖어버린 새내기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 선거에 있어서 시기의 문제·쟁점의 부재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점점 선거 운동원들과 선거운동본부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더해가고 있다.

특히 가장 크게 쟁점으로 부각되는 학부제·총선에 대한 대응방안이 별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는 현재, 사상적 차별성 만큼이나 차별적 정책·공약을 제시함으로써 학생대중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때, 선거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우리의 잔치’로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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