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주사파배후 조직적발」「대학에 김일성주의 동맹결성」등의 신문머리기사로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김일성주의 청년동맹(김청동)」사건에 대해 조작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경대공분실은 4일 (목) 친북주사파로서 한총련을 배후에서 조종해왔는 명목으로 「김청동」과 이 조직의 고려대 산하조직인 「2 16청년회」를 적발, 고려대 졸업생 및 재학생 11명을 이 조직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구속시킨 상태이다.

하지만 최근 일간지에 보도된 것처럼 구속을 위해 경찰측이 제시한 물적증거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이른바 「김청동」사건 전체에 대한 조작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경찰은 차현민씨등 3명에 대해서는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명목의 국가 보안법으로 구속시켰지만, 안병일씨등 8명에 대하여서는 「김정일에 보내는 충성편지」를 핵심증거로 제시,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이적표현물 제작 반포소지」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내용이 공개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던 「충성편지」17통이 지난 92년 남한조선노동당사건때 안기부가 증거자료로 제출한 편지들과 내용·활자체·띄어쓰기, 심지어 별표표시까지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재로써는 물적증거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편 공개된 편지자료에 대해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사람은 『경찰측이 핵심증거로 공개한 「충성편지」는 고려대의 복지협의회(복협)가 소지하고 있던 92년 남한조선노동당사건에 대한 정리자료중의 하나』라며『김청동사건발표 이전에 복협을 무단침입, 물품을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등 사전증거물 압수수색을 벌여 사건조작의 의혹을 더욱 짙게 했다.

』고 밝혔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구속된 11명의 학생들을 7월 27일 (수)에서부터 7월 31일(일)까지 기습적으로 강제연행된후 전원이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김청동」사건의 주요인물로 발표되었다.

이렇게 강제연행된 후 구속된 11명은 모두 다른과 출신으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심지어 서로 안면도 없는 사이이고 각자 자기생활에 성실했었다는게 주위의 여론이다.

특히 박현용씨 (철학·86)는 경찰이 주장하고 있는 94년 「2·16청년」조직결성식 당시 경남 함양에서 방위근무를 하였으므로 참석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고, 안병일씨(사회·87)는 졸업 후 결핵으로 요양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여서 조국 통일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활동했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원공부애 전념했던 차현민씨(신방과 대학원 졸업예정)에 대하여 후배 임준수씨(신방과 대학원 석사과정)는『경찰이 김청동핵심활동을 하고 있던 시기로 발표한 91년 8월부터 92년 6월까지 형은 어렵기로 소문난 신방과 대학원 입학시험공부에 전념했는데 한총련같은 방대한 조직을 배후조정했다는 것도 사실상 믿기 어려운 것』이라며 『대학원 때 성적도 항상 우등이였고 그 어려운 논문도 치밀한 준비로 잘 통과되고 이제 졸업과 취업만 남아있는데』라며 차씨의 평소 생활에 대해 말을 한다.

과거 학생운동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현재 이들 11명이 구속된 유일한 이유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서대필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강기훈씨의 경우처럼 많은 사건들의 「진실」이 은폐당하고 조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여기 지금 김청동사건이 또 하나의 진실이 은폐된 사건으로 기록되려하고 있다.

진실은 조작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지지만 조작당한 진실은 연루자 개개인의 삶 전체를 지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것은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진실을 위한 모든 사람의 노력이 함께 모여질 때 이루어질 것이다.

▲고대프락치사건 고대에서 프락치조사를 받고 나온 사람들이 돌연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고대생 1명을 구속한 것에 대해 고대내에서 구속된 정연철씨(심리·89)의 무죄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4일(목) 학생3명이 대자보를 메모하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던 행려병자 전귀희씨를 프락치로 판단, 조사하던 도중에 갑자기 재떨이를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던 전씨와 이를 말리던 학생 정씨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 전씨가 소파에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게됐다.

이후 자술서를 받은 학생들이 씻긴 전씨를 학교후문까지 데려다 준 후부터 1시간 20분후에 쓰러져 있던 전씨를 시민이 발견, 동부시립병원으로 옮겼으나 5일 (금) 오전 8시 10분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부검결과에서는 전씨의 사인을 구타에 의한 출혈과다에 의한 쇼크사로 밝히고, 정씨를 폭행치사죄로 구속했다.

하지만 전씨를 맨 처음 진료한 동부시립병원 의사 유운석씨는 『전씨의 몸에 있는 약간의 타박상이 발경됐으나 그것이 학생들의 구타에 의한 것 인지는 알 수 없다』며 『멍이 넓게 펴져 있는 점으로 최소한 10시간이전에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있다』며 전씨의 타박상이 학생들의 폭행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외에도 전씨가 발견당시 조사를 받던 때와는 달리 술이 많이 취해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빨 두개가 빠져 있었던 사실등을 미루어보아 전씨가 학교를 나간 이후 술을 마시고 누군가와 싸움을 벌인 것으로 짐작되고 전씨의 사인은 정씨가 아닌 학교를 나간 후 1시간 20여분간의 전씨의 행정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고대측의 타당한 무죄 주장에도 불구하고 폭행치사로 단언한 경찰의 긴급구속조치와 공안정국분위기에 편승한 언론의 입김이 무죄를 구속까지 연결시킨 것이다.

홍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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