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배 한국정치연구회원 페만전이 여전히 군사력의 중요성을 과시함으로써 탈냉전 세계에 대한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이후 탈냉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전략은 신세계질서 구상으로 출현했다.

우리는 페만전과 그 이후에 나타났던 미국의 몇가지 정책들에 대한 징후적 해석을 통하여 신세계질서 구상의 기본적 의도와 대략적인 구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국은 그들의 향수에도 불구하고 「팍스아메리카나」나 미국이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팍스아메리카나체제는 2차대전 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하여 성립되었던 것임을 기억할 때, 정치군사력과 경제력의 심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팍스아메리카나의복원이라는 향수는 누가 보아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부시가 자신의 신세계질서 구상을 밝히기 위해 계획된 네차례의 연설 가운데 4월 13일 앨라베마주 몽고메리의 맥스웰기지에서 공군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행한 첫번째 연설에서도 확인된다.

이 연설에서 부시는 「신세계질서」가 소련개혁의 성공여부와 유럽의 참여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으며 「선진국간의 공정한 책임분담」을 강조하였다.

한편,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를 구축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포기할 것이라고 본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소련과 유럽의협조를 중시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의도는 페만전의 진행과정에서부터 나타났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군사전략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국은 부시플랜의원칙 중의 하나인 군비통제에 따라 중동지역에서 사정거리 80Km 되는 모든 탄도미사일과 핵처리공장의 건설을 금지하며 10년간에 걸쳐 미국이 보유한 모든 화학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한다는 내용의 군사력 감축방안을 5월초 발표하였지만 첨단무기 등 재래식 무기의 수출은 오히려 늘리고 있다.

이것은 형식적 군규모감축을 통해 군비감축이라는 세계적 추세와 여론에 대응하면서도 새로운 군사전략의 도입을 통해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 미국의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제안보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비록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를 추진할 의사가 없고 현실적으로 그럴 능력도 없다고 하더라도, 경제등 다양한 협력에 기초한 안보가 아니라 군사력에 의한 안보를 추진함에 의해 어떠한 식으로든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의도는 명백한 것이다.

부시가 신세계질서 구상에서 밝힌 「선진국간의 공정한 책임분담」이라는 것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위해서는 소련과 유럽의 협조가 요구된다는 의미이지, 미·소·유렵의 관계가 동반자적 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은 켤코 아니다.

미국이 구상중인 신세계질서가 팍스아메리카나도 미·소·유럽의 동반자적 협력도 아니라면 미국이 의도하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는 어떤 행태로 관철될 수 있을 것인가. 페만전과 그 이후에 나타난 일련의 양상을 통해 우리는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페만전에서 나타난, 미국의 군사기술상의 우위에 기초를 두고 서방동맹체제의 동원과 소련의 협조를 결합하는 방식이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냉전 이후의 질서의모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구상중인 집단안보체제의 특징은 미군사력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미국의 재정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팍스아메리카나 또는 단일헤게모니를 구출할 수는 없어도 그것에 근거한 영향력으로 미국의 급격한 쇠퇴를 막고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신세계 질서 구상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면 한·소간의 정상회담과 120일 전쟁 시나리오는 두개의 상극적인 현상이 공존할 수 있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신세계 질서 구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의 두번째 시험대가 동북아지역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추이는 한반도 주변정세에 민감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질서, 즉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정책이 이 지역에서 평화의 기운을 차단시키고 시대적 추세에 배치되는 냉전과 긴장의 기운을 온존유지시킬 것임은 당연하다.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자신의 패권을 보장받기 위해 미·일동맹체제의 유지, 이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력에 대한 견제, 북한에 대한 고립정책을 계속할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당분간 남북한 간의 관계개선은 일정선에서 제어받게 될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북한―일본수교 교섭에 대한 미국의 개입, 북한에 대한 핵사찰수락촉구, 한반도 비핵지대화의 반대 발언등은 모두가 그러한 정책의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신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도 많이 자리하고있다.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및 세게경제와의 마찰이라는 내적 문제외에도 최근의 중소회담에서 보여진 새로운 세계질서에서의 미국의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소련과 중국의 협조라든지 EC 의 독자적인 군대창설 논의 등이 그것이다.

지난 22일 전세계 30개국 지도자들이 「스톡홀름선언」을 통해 천명한 「유엔강화론」등의 움직임을 볼때, 첨단군사력과 신전략을 기반으로 소련과 유럽의 협조를 얻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신세계질서」구상이 과연 의도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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